14. 주체할 수 없는 열기
선미도 명수도 혼자 살아온 세월이 짧지는 않았기에 집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이 처음엔 신경이 쓰여 한동안은 둘 다 밤마다 잠을 설쳐댄다. 이 동거가 둘이 되는 연습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는지는 두고 봐야 하겠다.
밤중에 무심코 잠옷바람에 화장실 갈 때도 주방에 물 마시러 가다가도 가끔 서로 마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방으로 뛰어 들어가곤 했다. 아예 잠옷이 아닌 티셔츠와 추리닝 바지로 잠자리 옷을 바꿔 버렸더니 조금은 편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명수다. 늘 사각팬티 차림으로 마음놓고 잤는데 밤에 화장실에 갈 때마다 바지를 껴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하지만 어쩌랴. 100 일 동안만큼은 참아야지.
"선미 너! 요새 얼굴이 왜 그래? 사랑하는 남자랑 같이 살면 뽀사시 하게 활짝 피어야 할텐데 전보다 부석부석 한 게 꼭 아픈 사람 같다. 무슨 일 있니?"
힘없이 카페에 들어서는 선미에게 연주는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본다.
"당연히 무슨 일이 있지."
"뭐? 그럼 벌써 당했어? 백 만원
받았니?"
"무슨 소리야. 얘는 상상을 해도 참..... 백 만원이 문제가 아니고 계약동거고 뭐고 정신이 피곤해 죽겠어. 밤마다 잠을 설쳐대니 몸도 찌뿌둥하고 입맛도 없어지네. 나 괜히 시작 했나봐. 지금 파기하기엔 자존심 상할 것 같고 내 발로 걸어 들어갔는데 말야."
"왜! 결혼도 안한 남녀가 한집에 같이 사니까 기분이 이상할 수밖에 그치? 그래서 잠이 안 오는 거지 응? 그대 품에 안기고 싶어서 말야. 아이그... 나 같으면 못 견뎌서 남자 방에 확 뛰어 들어가서 그대 품안에 팍 안길 텐데..."
"너 자꾸 놀리면 갈 거야. 계집애! 꼭 그러길 바라는 거 같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혼자 살아서 그런가봐.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명수 씨도 그런 가봐."
"그럴 만도 하겠지. 혼자 사는 게 몸에 배었는데 누가 가까이 있으면 신경 쓰이지. 둘 다 곧 익숙해지겠지. 그 고비를 잘 넘겨야지 어쩌겠어. 그럴 줄 몰랐었니? 결혼을 해도 처음 몇 달 동안엔 그렇던데 니 들은 미리 경험을 하니 그럴 일은 없겠네? 얘! 그런데 그 남자 너 한 테 은근히 찝적거리지는 안 하니?"
"점점... 차라리 그러면 벌금 챙기고 동거하는 거 그만 두고 싶어. 그런데 불행히도 나보다 더 철저히 말 잘 듣는 학생이야."
"다행이구나."
그때 명수가 카페로 들어 왔다.
"어서 와요. 바늘 가는데 실 간다더니
....."
"우리 선미 씨 갈 데라고는 여기 말고 있습니까? 그나저나 밖에서는
손잡아도 벌금 안 물어도 되니까 우리 악수라도 합시다. 아니 포옹은 어떨까?"
"어머머! 두 사람 이젠 아주 노골적이네. 늙은 처녀총각들 사랑 놀음
눈꼴시러 못 봐 주겠네. 그냥 손잡고 싶으면 잡으면 되지 악수는...."
"명수 씨! 착각하지 마요. 나 여기 아니라도 갈데 많아요. 안 가서
그렇지."
두 사람이 줄 곧 손을 잡고 술 마시는 모습이 젊은애들도 아니고 애늙은이들이 그러고 있으니 영 어색해 보인다.
"두 사람 정말 너무 하네. 술 마시면서 손잡고 있는 사람들 처음
보겠네."
"누님! 샘 나면 누님 손은 제가 잡아
드릴까요?"
연주 고향 동생이 들어오면서 빈정댄다. 그제 서야 둘은 손을
풀었다.
"어머! 상필 씨 오랜만이네. 요즘 잘 지내지? 연주 말이 동생 요즘
다이어트 한다고 술 잘 안 마신다며?"
"네! 다이어트가 아니라 사실은 며칠 전에 너무 많이 마셔서 위장에
탈이 났었나 봐요. 그래서 자제하는 거죠 뭐. 선미 누님은 요새 형님하고 잘 되시죠? 재미있어요? 누님! 나도 여자 한사람 소개 시켜 줘요.
외로워 죽겠는데....."
"동생 능력 있잖아. 알아서 해야지. 그리고 덩치 값 좀 해.
외로움은 아무나 타나?"
"누님! 우리 맨 날 술만 마시지 말고 요 건물 위에 노래연습장가서
한 곡 땡 기면 어떨까요?"
"누구 약 올려? 나 장사 때문에 못
가잖아."
"우리 셋이 먼저 올라가 놀고 있을 테니 누님은 손님 없을 때 잠깐
올라가서 노래 한 곡 부르고 내려오면 되죠. 김군 한 테 손님 오면 전화해라 하고....."
"그러면 되겠네. 야 너 머리 잘 돌아간다. 근데 왜 아직 애인도
없냐?"
"글세 말예요. 요즘 여자들은 남자들 외모 보단 돈 많은 남자가
좋다네 요. 그래서 나도 얼른 도장 하나 차리고 나서 결혼해야겠어요. 배운 거라곤 운동 밖에 없으니...."
아홉 시는 넘어야 손님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제 여덟 시가 되어가니 한 시간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연주는 조금 있다 올라가기로 하고 세 사람은 카페건물 이층에 있는 노래 연습장으로 올라갔다.
선미는 연주와 몇 번 노래방에 와 보고 명수와는 술집에서 몇 번 노래를
했었다. 처음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부끄러워서 크게 부르지도 못하고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었는데 곡목을 잘 몰라서 그렇지 노래는 이제
제법 부른다.
나훈아 노래라면 모르는 노래가 없을 정도로 나훈아 팬인 명수가 먼저 노래를 불렀다. 역시 나훈아 노래를 가수 못지 않게
노래를 잘 부른다.
"야아! 형님! 공장이고 뭐고 치우고 가수로 데뷔 하셔도 되겠네. 노래 정말 너무 잘 하시는데요? 여자들 꽤나 울렸겠네."
"흠! 많이 울고 갔지. 아니 지금도 내 노래에 반해서 뒤에 따라
오는 여자들 많아."
"남자들이란!"
너스레를 떨어대던 상필 이가 노래를 시작했다.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노래는 조용한 발라드 풍으로 분위기 있게 불렀다. 갑자기 명수가 일어나더니 선미의 손을 잡아 당겼다.
"나 춤 못 추는 거 알잖아요. 싫어요."
"가만히 나만 따라오면 되잖소. 여기서는 보는 사람들도 없으니 일어나
봐요."
"그래도...."
마지못해 그가 리드하는 데로 발을 옮기며 부르스를 춘다. 엉거주춤 서서 움직이는 선미를 명수는 그녀의 허리를 바짝 잡아당겨 자기 몸에 붙이고는 얼굴도 그녀얼굴 가까이 같다 댄다. 가슴을 밀쳐내려 꼼지락거리는 그녀를 그는 더욱 세게 허리를 당긴다.
"가만있어요."
상필 이는 스스로 제 분위기에 취해서 그런지 더욱 감미롭게 부른다.
명수가 얼굴을 선미의 귀에 바짝 붙인 탓인지 그의 숨소리가 크게 들린다. 숨소리는 차츰 조금은 끈적거린다 싶더니 뜨거운 입김이 그녀의
뺨과 귀를 뜨겁게 만들었다.
두 사람 다 겉옷은 벗어 버렸기 때문에 얇은 옷 위로 그의 따뜻한 가슴이 느껴지고 그녀의 두 젖무덤은 그의 가슴에 쳐 박혀 마음껏 짓눌리고 있다.
발가락 끝에서 뭔지 모르지만 짜릿한 것이 차츰 위로 치솟아 올라
뱃속에서 뜨거운 열기로 바뀌는가 싶더니 가슴으로 올라와 짓눌린 젖 가슴을 달구어 대니 두 젖꼭지는 뜨거운 열기를 받아 밖으로 더욱
뻗쳐 나가는 느낌이다. 혹시라도 이 남자가 그녀의 뜨거운 젖가슴을 눈치라도 채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지만 얇은 드레스셔츠 위로 벌써 느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속내를 알고 놀리지는 않을까 염려되지만 싫지 않은 건 어쩌랴. 아니 명수 역시도 처음부터 뜨거운 가슴을 주체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그녀가 눈치를 채고 거부를 하면 어쩌나 싶어 숨을 크게 들이쉬며 자제를 하고 있지만 몸의 저 아래 일부에서부터 꿈틀거리는 욕정을 감당 할 수가 없다.
마음과 달리 자꾸만 팽창해지는 몸둥아리를 그녀가 모르게 진정 시켜보려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더욱 거세게 고개를 쳐든다. 딱딱하게 경직된 그의 몸을 느끼는 순간 열기는 불화 산이 폭발하기
직전이다.
"어허! 이거 원! 애인 없는 사람 서러워서 못 살겠네."
상필 이의 존재를 순간적으로 잊어버린 그들이 놀라 원 상태로 돌아오자
연주가 들어왔다.
"어이구 누님! 잘 왔어요. 나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세요?"
"뭔 소리래?"
"하여튼 그런 게 있어요. 누님먼저 얼른
노래하슈."
성격은 화끈하고 터프 하지만 노래하는 목소리는 여성스럽게 가늘고 곱다. 상필이는 노래하는 연주의 모습에 반하기라도 했는지 입을 벌리고 다물 줄을 모른다.
"우리 누님이 지금은 여자로 보이네. 야! 노래 끝내주게 잘
하네."
연주의 노래가 끝나고 선미가 노래를 시작하자 이번에는 상필 이랑 연주가 춤을 춘다.
연주는 처녀 때부터 춤이라면 못 추는 게 없었기에 발놀림이 자연스러웠다. 두어 곡 연달아 더 부르던 연주는 전화를 받고는 황급히 카페로 내려갔다.
명수와 선미는 그렇게 숱하게 만나고 술 마시고 했었지만 오늘밤에 느낀 감정은 처음이다. 그래서 역시 남녀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인가 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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