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자전적 소설/◈연재소설-3.바람의 노래(연재중단)

[연재소설]바람의 노래 1.시련(2)

보라비치 2006. 10. 14. 21:41

1.시련(2)

 

.......따르릉.........따르릉.........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라 생각의 나래는 끊겨 버렸다.
"여보세요?"
"아이쿠 보살님! 안녕 하신가요."
"어머나 스님! 안녕 하세요?"
"허허허....! 마음고생이 많겠구려."
"죄송합니다 스님. 괜히 걱정을 끼쳐드려서...."
"아닙니다. 그럴 때는 잠시 집을 떠나보는 것도 괜찮지요. 그런데...내가 지금은 약초 재배하느라고 투자를 많이 하는 바람에 생활비는 많이 못 보내주고 한...백 오십 만원은 보내 줄 수가 있는데....그것 가지고 애들이랑 당분간 살아보세요. 사정이 나아지면 더 보내 줄 테니까...."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면 언제쯤 올라 올 건지 연락 달라고 하세요."
"네."

 

 정희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두 개 꺼내 남편의 옷을 챙기기 시작한다.

모임에서 한번씩 해외에 나가다보니 여행가방이 몇 개는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말 이대로 남편을 보내야 하는 것인지....

힘들겠지만 같이 부대껴보자고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서랍을 열고 속옷을 꺼내놓고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멀뚱한 처자식들을

두고 집 떠나 산 속에 들어가서 살겠다고 하는 남편의 심정은 오죽하겠냐 만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한마디쯤은 할 수 있으련만...

아이들 걱정은 한마디도 없는 남편이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다.

정희는 여태껏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닦아도 자꾸만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더니 급기야는 오열로 변해버렸다. 


 한참을 울고 나니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후련해졌지만 그것도 순간뿐이다.
차곡차곡 옷을 다 챙겨 넣고 방 한쪽에 가방을 밀어 놓는데 시은이가 들어왔다.
"벌써 들어오니?"
"네! 수강 신청하고 과 방에 가서 선배님들한테 인사만 하고 왔어요. 그런데 엄마 얼굴이 왜그래요? 부었네?"
"음...괜찮아..."
"울었어요?"
"..............."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근데 저 가방은 뭐야? 아빠 또 해외여행가세요?"
"아니...저....."
"그럼 지방 출장 가세요? 얼마나 계실 건데 가방을 두 개나 쌌어요?"
"음...좀 오래 계실 거야."
"어디로 가시는데요?"
"강원도....."
"강원도? 강원도 어디?"
"스님 계신 절에......"
"절에? 왜 하필 절 이예요?"
"시은아!"
"네?"
"지금부터 내 얘기 잘 들어."
"................."
 얼굴이 굳어지는 엄마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챈 시은이는 숨도 크게 쉬지 않고 엄마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엄마는 잠시 숨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아빠가.....아빠가 말이야....부도가 났어."
"뭐라구요? 부도라니요."
"그래 부도가 났어."
"어떻게...어쩌다가......"
"아빠와 거래를 하던 사람이 어음을 빌려 가서는 막아주지 않고 부도를 내 버리는 바람에 그거 해결 하다보니 우리 어음을 미쳐 막지를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부도를 내버렸단다. 그래서 아빠가....잠시 머리도 식힐 겸 절에 들어가 있으시겠데."
"그럼...우리는요? 아빠는 절에 들어가 버리면 되지만 집에 남아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라구요? 그래서 가방 싸 놓은 거예요?"
"음...."
"엄마! 왜 이렇게 답답해요? 그럼 앞으로 생활은 어떻게 할 건데요?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놨어요?"
"스님이 생활비는 보내 주겠대."
"그럼 빗 감당은 누가 하고요. 아빠가 떠나고 나면 남은 우리들이 무슨 수로 해결 하냐구요."
"그래서 말인데....너 일년만 휴학하고 취직하면 안될까? 나도 식당이나 어디...취직할 테니까. 시애도 대학 들어가면 아르바이트 할 수 있지 않겠니? 그때까지만....응? 스님이 보내주시는 돈으로는 적금을 들던지 해서 빚은 조금씩 갚아나가면 되고....."
"어휴 답답해. 집안에서 살림만 하던 엄마가 뭐? 식당에 나간다고? 말도 안돼. 그런 일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요? 얼마나 힘드는데...엄마는 몸이 약해서 하루하고 나면 쓰러질 거예요."
".................."
 
 아무 탈없이....걱정 없이 대학을 마쳐주고 싶었는데...말없이 제 방으로 들어 가버리는 딸이 측은하고 미안해서 정희의 가슴은 쓰리고 아팠다.
 
 틀에 박혀있던 여고생의 탈을 벗어 던지고 이제 막 대학생활에 적응이 되어 가려하는데 휴학이라니....시은이는 아빠가 원망스럽다.

엄마나 가족들보다는 남에게 더 많은 것을 베풀고 사는 아빠였다.

공부를 잘해서 늘 일 이등만을 해오던 자신을 국립대학에 보내기 위해 어려운 형편에도 고액과외까지 시켜가면서 뒷바라지를 했었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부모들의 기대와는 달리 사립대학에 가게되자 그때부터 아빠와 딸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용돈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줄 때면 꼭 화를 내시며 주셨다. 그렇지만 용돈은 엄마가 가끔씩 따로 주셔서 그럭저럭 버티어 나갔다. 그런데 부도가 났다니...그것보다는 부도가 났으면 해결을 할 생각을 해야지 우리는 어쩌라고...아빠만 떠난다고? 말도 안돼....
 내일 모레면 개강인데...시은이의 가슴도 착잡하고 서글퍼 눈물이 나온다.

 저녁 늦게 서야  창수가 들어 왔다.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벌겋다.
"술 마셨어요?"
"응 한잔했어."
"당신 옷 싸 놨어요. 스님이 언제쯤 오는지 연락 달라더군요. 그리고 시은이 휴학계 내라고 했어요."
"..................."
"언제 가실 거예요?"
"사무실 대충 정리 좀하고...한 삼사일 후에 가지 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