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자전적 소설/◈연재소설-1.날고싶은 새(종결)

연재;날고싶은 새<14> 한밤의 질주

보라비치 2005. 10. 18. 09:46

14. 한밤의 질주

 

 그녀는 맥주 한 병이 주량인 윤정 이가 자꾸만 걱정이 된다. 괜히 순진한 친구를 끌어  들인 것 같은 죄책감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저렇게 마셔대다 쓰러지면 어쩌나. 가시나 되게 신경 쓰이게 하네. 아이고 모르겠다.>
 
무대에선 손님들과 아가씨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벌써 술이 취해버린 남자들이 확실치도 않은 발음으로 괙꽥 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통에 홀 안은 머릿속이 띵할 정도로 시끄럽다. 밴드는 드럼, 기타, 전자 오르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쪽에서도 노래 신청을 했단다.


윤정 이는 양 볼에 불이 난 것처럼 화끈거리고 속이 메스꺼워 지기 시작했다. 천사장님이 먼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모두가 스테이지로 나가자 갑자기 속에서 뭔가 올라오는 거 같아서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 전체가 우그러지면서 변기가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다. 언젠가 집을 뛰쳐나왔을 떼 위스키 마시고 나서도 이랬었지? 그녀는 변기를 붙들어 안고는 토하기 시작했다.

 

<이젠 쓰러지지 말아야지, 정신 차려야지 윤정아 정신차려!>

 

한참을 변기에 엎드려 정신을 가다듬고는 거울을 보니 그녀의 꼴이 가관이었다. 얼굴 목 팔 등이 불긋불긋한데다 눈알도 술이 취해 선지 초점을 잃어 멍청해 보이고 토하느라 빨갛게 칠한 입술이 쥐잡아 먹은 모습이다. 그녀는 웃었다. 그 꼴이 너무 우스워 자꾸만 웃음이 나와 웃는데도 눈에는 눈물이 나온다.

 

<야 이 바보야 이제 시작인데 이러면 어쩌냐?>

 

"여기 있었네. 가시나 눈치가 그래 없나 술도 못 먹으면서 빈속에 갑자기 마셔대면 어째. 대충 손질하고 가자 기다린다. 저 손님들 잘만하면 팁 많이 준단 말야."


"나 때문에 너 오늘 팁 못 받으면 어떡하지?"


"그러니까는 지금부터라도 비위 잘 맞추면 되는 거라고 야 술은 이제 한 모금씩만 알았제?"


토하고 나서 그런지 속이 조금 편해진 거 같다. 무대 쪽 에서 노래가 끝나더니 그녀에게 마이크를 건네주며 한 곡 부르란다. 얼른 제목도 생각나지도 않고 또 이런 곳에서는 노래를 처음 불러보기에 떨리고 망설여지지만 어차피 해야 될 거라면 해버리는 것이 좋겠다. 손님들 분위기에 맞게 불러야 할 것 같아 '꿈속의 사랑'을 불렀다.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 이라서
  말 못하는 이 가슴은 이 밤도 잊어야 하나.....'


노래가 끝나자 사내들은 박수를 치며 앵콜을 외쳐대는 바람에 어떤 노랜지 기억도 없는 노래로 마무리를 하고  자리로 들어와 앉으니 모두들 박수를 치며 술잔을 들고 '브라보'를 외쳤다.


"야 윤 양 처음이라 더니 잘하네 역시 끼가 있구만 그래 앞으로 우리 친해 보자고."

 

 처음으로 팁이란 걸 받아들고 넋을 잃고 그 몇 장의 지폐를 쳐다보고 있는데 다시 손님들이 들어왔다. 양 양은 그렇다 치고 손 양은 이제 불과 이일 시작 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데 단골 손님이 제법 있는 것 같다. 그들 말처럼 끼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돈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것인지 어쨌거나 재주도 좋다.

 

 영업이 끝나고 택시를 타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귀가를 하기 때문에 주택에서는 눈치가 보여 살기가 힘들어 여관에서 지내는 게 편하단다. 몰래 도망치는 여자들 때문에 방세는 거는 거 없이 미리 한달 월세를 낸단다.

 

 그렇게 그녀의 호스테스 생활은 시작되었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생각조차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이런저런 웃을 일도 많고 울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서비스업의 생태에 차츰 물들어가고 노래를 잘한다는 이유로 윤정 이는 클럽의 꽃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 손님이라도 노래를 청하면 불러야 했고 자신을 찾는 손님이 없더라도 무대로 올라가 노래를 했다. 지배인의 특별요구이다. 때문에 그녀는 인기도 좋았지만 손 양과 양 양의 밥값은 모두 윤정 이 몫이 되어 버렸다. 지네들 덕분이라나.....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영업시간 끝나고도 바로 귀가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배인과 실장 등 임원들이 모여 그날 아가씨들의 태도나 잘잘못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글래머 박 마담의 눈치가 심상치 않았다. 처음엔 얘기도 잘하고 상냥하더니 요즘엔 윤정 이에게 말을 잘 걸지도 않고 뚱한 표정이다.


질투? 질투라면 뭘 질투를 하는지...오히려 매상이 많이 오르니 좋아라 해야 할텐데 혹시 지배인 때문일까? 일주일에 한번씩 부인이 내려오는 유부남에게 붙어 어쩌겠다는 건지. 지배인으로서는 관리 차원에서 윤정 이에게 잘 해주는 것일 뿐인데, 아니면 들어온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이 인기 좀 있다고 자기랑 같은 높이로 대우받는 것 때문에?

그래봐야 호스테스란 딱지는 둘 다 같다는 걸 모르나? 호스테스란 직업이 이토록 어렵고 힘든 직업인지는 윤정이 자신이 체험을 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자신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손님들에겐 웃어야되고 나오지 않는 애교도 부려야되며 먹기 싫어도 술을 마셔야 한다. 물론 다른 직업도 많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구할 수 있는 직업이기에 시작했다가 그대로 눌러 앉아버리는 여자들이 많았다. 새삼 그녀들이 불쌍하게 보인다.


 <다른 사람들 눈에도 내가 불쌍해 보일까? 아냐 한심해 보일지도 몰라.>
 
 어느 날 영업시간이 끝날 때쯤이다.
 평소에는 늘 일찍 와서 놀다가던 손님들 두 명이 술이 잔뜩 취해서는 들어왔다. 이 시간에 들어오는 남자들은 거의가 다른 속셈이 있어 들어온다는데...


 마담이 들어갔다 나오더니 손 양과 윤 양을 찾는단다. 미리 앉아있던 아가씨도 쫓겨 나왔다.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지배인도 눈짓을 하면서


"잘 모셔 단골이니까 그리고 술이 많이 취했으니까 자네들은 많이 마시지 말고 알아서 밑에 휴지통에 부어버려 알았지?"


첫날 술 마시고 토하던 날 다음에 손 양과 양 양한테 술 많이 마시지 않는 방법을 단단히 교육을 받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같이 나가기를 원했고 싫다고 한다면 이 술집하고는 인연을 끊어버린단다. 안 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서 보여 주었다. 손 양은 같이 가자는 눈짓을 했지만 윤정 이는 거절을 했다.


"저...오늘은 제가 그걸 하기 때문에 안되겠는데요."


 술이 취해 선지 말을 무시하는 건지 막무가내 팔을 움켜잡고는 밖으로 나가려했다.


"같이 갔다가 눈치껏 빠져 나오면 되니까 같이 가자 야 수표잖아 수표."


 손 양도 그녀의 팔을 잡아 당겼다. 지배인이랑 마담도 같이 가라는 눈짓을 했다.
 
 어디로 가는지 택시 안에서 그녀는 어떻게 빠져 나와야 되는지 두렵기만 하다. 얼마가지 않고 차를 세우고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 손 양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지배인에게라도 같이 못나간다고 했었다면 오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르는데....


원망도 순간이다. 그녀가 끌려들어 가다시피 방으로 들어가고 손 양과 다른 남자는 그 옆방에 들어갔다. 옷도 갈아입지도 못하고 끌려와서는 드레스 차림인 그녀를 번쩍 안아들고 침대 위에 눕혔다.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되는지 그녀의 머릿속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어지럽게 돌아간다. 지독한 술 냄새가 그녀의 바로 코앞에서 나는가싶더니 입술을 빨아대기 시작하고 겉옷은 벗겨지고 있었다. 입술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 지기 시작한다. 바로 이런 것인가!


"지금은 안돼요."


"뭐? 뭐가 안 된다는 거야? 가만히 있어봐."


"사장님 뭐가 그렇게도 급하세요? 아직 시간도 많은데. 샤워부터 하시죠."


"그래? 으응 좋아. 씻고 올 테니까 옷 다 벗고 기다리고 있어 응"


 다행이다. 정 아가 자주 쓰는 수법을 전수 받은 것이다.

남자가 욕실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그녀는 옷을 입고 신발은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왔다. 손 양이 걱정이 되었지만 그녀가 알아서 하리라 지금 자신이 남 걱정할 정신이 있으랴. 그 남자가 뒤쫓아 올 것만 같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앞만 보고 뛰었다. 긴 드레스가 자꾸만 발에 걸려 무릎위로 걷어올려 들고뛰었다.


 소매도 없는 얇은 옷이라 가을 밤바람이 싸늘하게 추웠지만 그녀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고 자정이 훨씬 지난 길거리는 간간이 택시만 지나갈 뿐 버스도 사람들도 없는 거리를 그녀는 발바닥이 아픈 줄도 모르고 뛰었다. 오직 흐르는 눈물만이 함께 할 뿐 이었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이 꼴이 뭐야 돈이 뭐 길래 내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 나의 운명이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건가?>


갑자기 끌려나와 택시 비도 없다. 별로 멀지 않은 거리가 왜 그리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이대로 들어가면 지배인은 뭐라고 할까?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문을 닫으려고 불이 다 꺼진 클럽 안으로 뛰어들어가자 모두들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사색이 되어 맨발로 뛰어 들어오는 모습에 질려 아무도 말을 하진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