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자전적 소설/◈연재소설-1.날고싶은 새(종결)

연재;날고싶은 새<13> 호스테스

보라비치 2005. 10. 15. 10:16

13. 호스테스
 
 모두 나가고 아무도 없을 때 윤정 이는 가방을 쌌다. 여기에 처음 들어 올 때처럼...
달라 진 것이 있다면 올 때는 겨울이었고 지금은 초여름이라는 것이 달랐다.

 

 가방을 끌고 나가면 동네 사람들 눈에 뜨일 거 같아서 택시를 불렀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가고 싶었다. 불현듯 기차를 타고싶어서 서울역으로 향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처음 엄마랑 부산에 내려 갈 때보다 기차가 달라 보였다. 하기야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문화도 발전하고 기차가 아닌 열차로 바뀐 것이다. 열차 안에도 훨씬 좋아졌다.

굴을 지나도 깜깜 하지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다. 김밥장수는 여전히 지나간다. 김밥도시락하나를 샀다. 사이다도....

 

 눈물이 흐른다. 이 길을 다시 내려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동생들을 찾아서 얼굴만 보고 다시 내려 갈 것이라고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지금 흐르는 눈물은 무슨 뜻일까.

왜 일까? 차라리 가지 말라고 한마디만 더 들었어도 이렇게 서운하진 안았을 텐데 자꾸만 자신이 서글퍼진다.

 

 지금쯤 나올 때 써 놨던 쪽지를 보았겠지. 가라고 했던 말을 후회하고 있을까? 아니면 갑자기 다 커버린 자식이 나타나 양육비 거론이 되니 골치가 아팠을까?. 낳은 자식에 대한 애정은 남아 있기나 한 것일까? 아무려면 어떨까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부산에 도착한 다음이 더 걱정이다. 그래서 눈물이 더 나는 것 일거다.

 

 엄마에겐 이 년여 동안이나 나갔다 들어오면서 빈손으로 들어오는 딸년이 반갑지 만은 않으리라. 그 동안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이 되었을까? 혹시 아버지가? 아니다. 차비도 겨우 얻어서 나온다던데....
 부산 역에 도착하여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곳이라 그런지 포근한 바람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이대로 집으로 들어갈까? 때리면 때리는 데로 욕하면 욕하는 데로 다 받아들여 볼까? 그럼 그 다음은? 한번으로 끝이 난다면 몰라도 두고두고 되씹으며 진을 빼겠지? 싫다. 아! 답답하다.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라도 물어보고 싶다. >

 

 생각 따로 몸 따로 라는 말이 있던가?
윤정 이는 어느새 손 양이 적어 주었던 손 양 친구전화번호를 펼쳐들고 공중전화부스를 찾는다. 한참동안 받지 않는 거 같더니 자다 깬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윤정 이는 시계를 보니 오후 세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여보세요? 저...000여관 이예요? 양미경이라는 아가씨 아세요?"


"양미경? 아아 203호 아가씨? 잠깐 기다리소 방에 연결 해 줄께요."


"..............."


"여보세요! "


"여보세요! 저...손 양 아세요?


"손 양? 내 친군 데. 누구 신데예?"


"아..저...몇 달 전에 초원 커피숖에서 같이..."


"아아! 그 혹시 미스 리 아닙니꺼?"


"네! 맞아요. 손 양이 전화번호를 가르켜..."


"잠깐 기다려 보이소! 야! 야! 정아 야! 전화 받아봐라. 미스 리란다."


 친구는 옆에서 자고 있는 손 양의 이불을 휙 걷어치우고 깨운다. 미스 리라는 소리에 그녀는 벌떡 일어나 수화기를 뺏었다.


"뭐? 미스 리라고...여보세요 나야나 어디서 뭐 했길레 인제 전화하노 어데고?"


"으응 지금 부산 역인데 좀 만날 수 있을까?" 


"부산 역이라고...어데 갔다오는 길인가 보네. 내가 준비하고 나갈라 하면 시간이 걸리니까 미스 리가 이리 찾아오면 안 되겠나"

 

 윤정 이는 손 양이 불러 주는 데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 새로이 도전 해야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그녀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집을 떠나 이년 여 동안 살면서 서비스업의 생태를 조금은 듣고 보아 왔지만 감히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 뛰어 들려는 용기를 주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주어진 운명이려니 조용히 받아들이자.
 
 000여관은 찾기 쉬웠다. 건물 꼭대기에 커다랗게 간판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방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들어 가니 또 다른 골목입구에 여관입구가 보였다.


 큰 나무들이 양쪽에 죽 놓여져 있어 유리로 된 문이 가려질 정도였다. 한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곳이라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진다.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손 양이 꽥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나왔다.


"미스 리야! 어서 와라. 와 인제 연락 하냐. 내가 얼마나 보고싶어 기다렸는지 아나."


 그녀가 있는 방은 이층 맨 안쪽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머리가 삼발이 된 여자가 부지런히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잠 깬 거야? 미안해."


"아니다. 안 그래도 일어나서 출근 준비해야 되는데 잘됐지 뭐. 야는 내가 말하던 친구 양미경이다. 둘이 인사해라."


 서로가 얼굴은 초면이지만 손 양이 중간에서 얘기를 하도 많이 해서 구면과도 같았다.


"우리 서로 친구들이니까 양양하지 말고 우리끼리는 이름 부르자. 응? 좋제?"

 

알고 보니 둘 다 가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가명을 쓴단다.


"미스 리 니도 가명 써라 음...윤 은 영 이라고 해라. 내가 처음에 그 이름 쓸라고 했는데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 그만뒀는데 니는 예뻐서 딱 어울린다 야. 그리고 빨리 준비하고 우리하고 같이 가자."


"오늘 바로? 내일 가면 안되까? 숨도 돌리면서 생각 좀 해보게..."


"야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생각은 무슨...여기 왔을 땐 결심했을 거 아니가. 빨리"


'알았어"


"그런데 맨 얼굴은 좀 그러니까 화장 조금만 해라."

 

 커피숖 일할 때 큰언니가 화장하지 않아도 청순해 보이는 게 보기 좋다고 해서 늘 입술만 약간 바르는 게 전부였었는데 약간의 메이컵만 했는데도 무척이나 어색하다. 옷은 전에 입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야야! 너무 이쁘다. 영화배우 같다 야. 진작 화장 좀 하지"

 

 그녀들이 일한다는 클럽은 버스로 몇 정거장 되지 않는 곳에 있었다.

아직은 시간이 일러서 인지 간판에 불은 켜 있지 않았다. 조그만 조명등만 켜져 있어 어두컴컴한 홀 안은 온통 붉은 색으로 장식이 되어있고 벽은 모두 거울로 되어 있어 약간은 좁고 긴 홀 안이 거울에 비춰져 넓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양쪽으로 놓여진 테이블마다 다른 테이블이 보이지 않도록 높게 칸막이들이 되어있었다. 안쪽에는 스테이지가 있고 그 옆으로 조금은 불이 밝게 켜진 조그만 룸이 있는데 '대기실'이라고 적혀 있고 여자들이 야한 드레스 차림으로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냥 나가 버릴까? 나도 여기서 일하게 된다면 저런 모습을 해야 되는 거겠지? 어떻게 할까...아냐 이 곳에서 잘만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데... 지금 내 처지가 이것저것 가릴 여유는 없지만 막상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도 꼭 여기라야 할까?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될 것 같다.>

 

"저...있지...나..."


"여기서 잠깐 만 기다리고 있어라. 위에 지배인 님한테 전화 해 볼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정 아는 입구 쪽으로 가버리고 옆에 있던 미 경이가 이 곳 사정을 대충 설명을 해 주었다. 클럽 건물주인이 사장이고 사 층까지는 커피숖, 당구장 등 모두 영업장이고 오층이 사장님 자택이란다.

지배인은 사장님 동생으로 부인과 아이들은 서울에 다 있으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그 들이 내려온단다. 형님인 사장이  나이가 많고 건강이 좋지 않아 경영을 하지 못하자 이곳에 내려와 지배인으로 있지만 실제 경영인이나 마찬가지란다. 그래서 부인도 말없이 내버려두는 것이란다.


"양 양아! 뭐하고 있어 빨리 준비 안하고."


"알았어! 야! 참 이리 와 봐봐!! 여기는 정 아랑 나랑 친군데 여기서 일 하려고 왔어 인사하고 앞으로 잘 봐줘! 응? 얘는 윤 양이고 여기는 우리 클럽의 실장이야"


 "윤 양? 음...예쁜데? 잘 해봅시다."


 검은 양복 정장 차림의 훤칠한 키가 깔끔해 보인다. 가슴에 달린 명찰에 '실장 장기수'라고 적혀있었다.


 그때 홀 안의 조명등이 모두 켜지고 붉은빛이 더욱 붉게 보였다. 여자들의 야한 드레스가 조명불빛에 더욱 번쩍이고 화장한 얼굴들이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를 열고 있는 느낌이다.


"어이 윤 양 이리 와보소."


 실장이 부르는 쪽을 보니 머리가 조금 벗겨지고 호리호리 한키에 나이가 조금은 들어 보이는 남자랑 정 아가 들어오고 있었다. 정 아는 대기실로 뛰어들어가 화장을 고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안녕 하세요."


"어서 오세요. 손 양한테 대략 얘기는 들었는데 같이 일 하고 싶다고? 자신 있어요?"


"아이고 지배인 님은 자신 있으니까 왔지요."


"그럼 대기실에 있는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도 고치고 장사 준비해야지 양양이 좀 도와주지 그래"


"오늘부터 일해야 되나요? 내일부터 하면 안 될까요?"


"무슨 소리야. 온 김에 하는 거지"


"그래요. 왔으니까 오늘 한번 해봐요."

 

 윤정 이는 졸지에 이름까지 바뀌어 윤 은 영 이가 되어 버렸는데 낯설지만 이곳에 있으려면 실명보다는 가명도 괜찮을 것 같았다.

머리는 그대로 길게 내려뜨린 체 손 양이 화장만 조금 더 고쳐주었고 소매 없는 하얀 드레스는 가슴에서 엉덩이 아래 쪽 까지 착 달라붙었다가 맨 아래쪽만 하늘하늘 퍼지는 옷이었다. 하얀색이 조명을 받아 더욱 눈이 부시다. 멀리서 보면 옷만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이 보인다. 처음 입어 보는 옷이라 부끄럽고 어색하다.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또 다른   윤 은 영의 모습이었다.

 

<과연 잘한 짓일까? 이제 와서 어쩌겠나 오늘 한번 해보고 안되면 내일은 오지 않으면 될 거야 그래 오늘만이야. 엄마가 내 모습을 보면 아마 기절을 하든지 머리카락 다 뽑아 버리고 죽도록 두들겨 패겠지?. 어 휴!!>

 

 하얀 드레스 셔츠에 나비 넥타이를 맨 세 명의 웨이터가 더 있었는데 나이가 어려 보였다.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직 결혼을 안 했다는 마담이란 여자는 어깨 넘어 까지 내려오는 머리에 조금은 뚱뚱 해 보이는데 좋게 말하면 글레머 였다. 지배인의 애인  이라고도 한단다. 손 양과 양양이 곁에서 눈치를 살펴가며 귓속말로 이것저것 얘기를 해준다. 이 안에 있으니 바깥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겠고 비가 오는지 태풍이 부는 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손님들이 조금씩 들어오고 대기실에 앉아있던 아가씨들도 하나 둘씩 불려 나갔다. 자신들의 단골손님이 오면 알아서 나가는 아가씨들도 있다. 한참 후에야 손 양과 양 양을 부르는 실장의 소리가 들려 나가려는데


"윤 양도 같이 들어가고 오늘 처음이니까 손 양과 양양이 둘이서 잘 가르쳐줘라."


가슴이 너무 뛰어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손님이 네 명이라 다른 아가씨도 한 명 같이 들어갔다.


"어머 천사장님 오셨어요? 자주 좀 오시지 오늘은 요 특별히 새로 온 아가씨 인사드립니다. 얘! 윤 양아 인사드려!"


"처음 뵙겠습니다. 윤 양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오오! 이리 앉아봐라. 근데 딱 보니깐 이런데 처음인 거 같네. 우리는 척 보면 알거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그만하면 괜찮고 잘만하면 괜찮겠다. 잘해봐."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처음부터 반말로 지껄여 대는 게 기분이 거슬렸다. 초원 커피숖에 일했던 김 양이 언젠가 했던 얘기가 언뜻 생각난다.

 

<간 쓸개 다 빼놓고 무조건 손님들 비위를 맞춰주면 그런 남자들은 속물이라 그저 좋아서 팁을 많이 준다 이거야.>


그래서 그런지 월급 가지고는 턱도 없이 쇼핑 다니고 하더니 관리 차원에서 그렇게 해야 된다나....더구나 이런 맥주클럽은 월급 없이 순전히 팁을 받아 생활을 해야 되기 때문에 자기 손님을 많이 만드는 게 좋단다.

 

 술과 안주가 들어오고 그녀들이 술을 따르려 하자 손님은 윤정 이에게 술을 따르라고 한다. 술을 따르고 있는 그녀의 손이 어찌나 떨리던지 넘치고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 처음엔 다 그런 거야 그 대신 가슴 한번 만져보자."


 대뜸 남자의 커다란 손이 깊게 파여진 가슴속으로 들어와 그녀의 젖무덤을 움켜  잡았다. 소스라치게 놀란 윤정 이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대기실로 뛰어 들어갔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왈칵 나왔다. 손 양이 뒤따라 들어오면서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냐? 이런데 있으려면 그런 것쯤은 견뎌 내야 돼. 우리도 뭐 좋아서 이러는 줄 아냐? 돈은 빨리 많이 벌어야 되고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 참고 견디는 거야. 너도 돈 벌어야 되잖아. 우리 같이 참아보자."


 손 양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린다.


"이봐! 이런데 오면서 모르고 왔냐? 내숭 떨지 말고 빨리 안 들어갈래? 손님 그냥 가버리면 윤 양이 책임 질 테야?"


 실장이 화난 목소리로 다구친다.


"알았어 금방 들어 갈 거야 에그."


 화장을 고치고 손님 자리로 다시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천사장님은 얘가 오늘 첫 자린데 처음부터 그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놀래잖아요."


"야 이 아가씨야 이런데 와서 몸 도사린다고 누가 알아 주냐? 그 만한 각오는 하고 왔을 거 아냐. 윤 양이라고 했냐? 얼마나 자세가 되어 있는지 내가 실험한 거니까 인자 술 한잔 마시라."

 

 윤정 이는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호스테스라는 것이 이럴 줄 몰랐냐고 아니 아주 모르진 않았지만 순간 당해버려서 놀랬다고 달래고 싶다.

여기서 돌아서 버리면 내 꼴이 더 우스워 지겠지? 어차피 새로운 운명에 도전장은 던져 져버려서 다시는 번복할 수 없는 거야. 이것도 자존심  일까? 죽어서 썩을 자존심!

 쌉싸름한 액체가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간다. 오기로라도 차라리 취해 버리자.


"어이구 내숭 떨더니 술은 잘 마시네 자 내 잔도 받지"


돌아가면서 부어 주는 데로 홀짝홀짝 받아먹으니 앞자리에 앉아있는 손 양은 자꾸만 천천히 마시라며 눈짓을 해댄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