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자전적 소설/◈연재소설-1.날고싶은 새(종결)

연재;날고싶은 새<11> 여행

보라비치 2005. 10. 14. 22:11

11. 여행
 
장사하는 사람들의 심리랄까. 조금 잘 되면 자꾸만 크게 벌리고 싶고, 조금 장사가 안되면 먹고 살일 가마득하다며 온갖 걱정 다 한다. 왜 그리도 조바심을 내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기다리는 마음 인내하는 마음이 너무 부족한 거 같다.


 시내에서는 한참 들어와 장소가 외지다는 이유로 번화가로 나가야 된다며 큰언니는 다방을 내놓고 좀더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자리를 보러 다녔다.

 

 마침 이 곳보다는 약간 비좁지만 시내 중심지 쪽에 괜찮은 커피숖으로 옮기게 되었다. 덕분에 세가 엄청나게 비싸서 망설였지만 사채를 조금 내서 계약을 해버렸단다. 식구들도 모두 그대로 따라갔고 레지도 한사람 더 두었다. 주위에 대형 음식점도 많고 술집도 많고 개인 사무실도 많았다.

 

며칠동안은 아침에 끓여놓은 엽차를 커다란 주전자에 담아 주위에 있는 개인 사무실마다 돌며 배달해주고 인사를 했다. 호기심으로도 오시는 손님들이 꽤 많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먼저 가게에서는 조금 짓궂어도 지나친 행동이나 요구는 전혀 없었는데 이곳에선 노골적으로 농담과 손장난을 좋아하고 저녁이 되면 죽치고 앉아 있다가 아가씨를 불러 달라던지 같이 나가자는 놈팽이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새로 왔던 김 양은 다른 곳에서 경험이 있었던 아가씨라 그런지 제법 재치 있게 거절도 잘하고 손님들과 죽이 잘 맞아 노닥거리기도 잘했다. 가끔은 그들의 대화 속에 퇴근 후에 만나서 술도 같이 마시고 밤도 같이 보내는 것 같다.

 

눈치 빠른 큰언니는 진작에 김 양을 내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데리고 올 때 선불을 준 것이 있어 섣불리 말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신경 써서 자리를 택했으면서도 손님들의 취향은 미쳐 알아보질 않았던 걸 후회하였다.

 

 이곳에 이사한 후부터 작은언니는 아예 집에 들어앉아 출근을 하지 않았다. 결혼 준비를 하나보다.


 번화가라서 수준이 좀 높을 거라는 생각이 착각이었다고 느낄 때는 이미 손님들에 대한 혐오스러움 때문에 장사를 포기해야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먼저가게에서의 단골손님들은 한결같이 이런 물장사를 제대로 하려면 그런 것들 쯤 이야 다 겪는 것이 다반사고 그런 고지식한 정신은 버리고 간 쓸개는 다 빼놓고 해야 되는 게 물장사 아니냐 그런다고 누가 알아 주냐 는 것이다. 그 말도 맞기는 하나 언니로선 장사를 못하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냥 잠시 장사가 되지 않더라도 그대로 가만히 있을 걸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언니도 별 수없이 장사하는 사람들의 욕심이랄까 그런 마음은 누구나 똑 같은 모양이다.

 

어느 날
저녁에 일찌감치 커피숖 문을 닫아버리고 언니는 식구들을 모아 놓고 의논을 하였다. 김 양은 이미 그만두게 하여 작은언니 빼고 예전의 식구들만 앉았다.


"알고 있겠지만 내가 장사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어쩌지? 손님도 없고 그러다 보니 사채이자도 밀리고 해서 할 수 없이 가게 내놨다. 이번에 문 닫으면 동생 결혼식도 얼마 남지 않았고 당분간 쉬고 싶은데..... 김 군은 다른 곳에 내가 부탁해놨고 손 양하고 미스 리는 어떻게 하지? 참! 미스 리는 집에 한번 가보지 엄마가 걱정 많이 하실 텐데."


"................."


"우리끼리 한번 의논 해볼게요."

 

 갑자기 윤정 이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너무 편안하게 살아 왔던 것 같다. 지나온 시간이 너무도 짧게만 느껴진다.

 

 <집에 가야 될까? 가고싶다. 엄마가 보고싶다. 하지만 어떻게 가지? 엄마가 날 보면 반가워할까? 머리채를 쥐어뜯고 두들겨 패지는 않을까? 아냐 안돼! 이대로는 안돼! 엄마는 돈을 많이 벌어다 주면 때리지도 화내지도 않을 거야. 이왕 내친김에 돈을 벌자 돈 벌어서 집에 가야지.>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 그녀를 손 양이 툭 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보니 언니는 이미 윗 층 방으로 자러 올라 가셨다.


"무슨 생각을 그래 하고있냐? 미스 리 야! 내가 아는 친구가 있는데 한번 만나서 얘기 해보까?"


"누군데?"


"으응! 미스 리 오기 전에 같이 일했던 친군데 요새 돈 잘 번다고 하더라구. 전에도 한번 만났었는데 내보고도 오라고 하더라. 애는 착하고 좋은 애다 어때?"


"그래? 일단 생각 좀 해보고 말할게."


 이대로 집에 들어간다고 해도 살아남을지도 모르고 엄마의 극성맞은 성격 때문에 마음대로 취직도 힘들고 차라리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까 생각도 해보지만 손 양이 말하는 그 친구는 맥주클럽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언젠가 잠깐 들은 것 같아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윤정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찌해야할지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다 문득 고등학교 다닐 때 엄마의 부탁으로 서울 이모에게 편지를 써주면서 혹시나 하고 이모 주소랑 또 하나의 주소를 발견하고 몰래 따로 적어놨던 것이 생각났다. 순간 기쁨의 소리를 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어쩔 줄 몰라한다.

 

 <그래 서울로 가는 거야. 이 기회에 서울 가서 동생들을 찾는 거야. 이년 가까이 모아둔 돈도 조금 있으니까 이거면 차비도 충분하고 몇 일은 견딜 수 있겠지? 가자 서울로.>

 

"야! 미스 리야. 왜 그래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냐?"


손 양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에게 다그쳐 묻는다.


"응? 아.. 아무 것도 아냐 그냥...."

 

 윤정 이는 얼른 이층 방으로 뛰어 올라가 가방을 뒤져보았다. 이사할 때 옷을 넣기 위해 샀던 커다란 여행가방이다. 다행히도 집에서 나올 때 들고 나온 손 지갑 속에 조그맣게 접어 넣은 메모지를 발견하고 더욱 기뻤다.

이럴 때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필요 한 것이리라. 핸드백은 엄마가 자주 닦아주면서 안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손 지갑 속에 꽁꽁 접어 넣어 두었던 것이다.

 

 며칠 후,
 그녀에겐 남달리 너무나 잘 해주었고 엄마처럼 늘 보살펴주며 걱정을 해 주시던 언니들, 짓궂지만 정이 많은 김 군, 나이에 비해 윤정 이보다 빨리 세상물정 다 겪은 것처럼 언니 같은 친구 손 양.

모두 헤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운명은 그들을 헤어지는 아픔을 겪게 만들었다. 모두 나오는 눈물을 감추며 각각 제 갈 길로 돌아섰다. 손 양과는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그녀 친구 전화번호만 적어두었다.

 

 윤정 이는 카다란 여행가방은 끌고 또 하나의 작은 가방을 손에 들고 고속버스터미널로 발길을 돌렸다. 처음으로 멀리 떠나보는 여행이기에 한껏 마음이 들뜨기도 하지만 두려움도 없진 않았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녀에겐 새삼 그리움으로 더욱 가슴 설레게 한다. 부산을 벗어날수록 그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여지는 정다움이 있었다. 양지바른 곳보다 그늘진 곳엔  희끗희끗 눈이 쌓여 있는 게 보인다.

 

그녀가 부산에 내려 올 때도 겨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겨울에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다. 긴 세월의 변화로 어린 정 명언 이가 아닌 이제 다 자란 이 윤정 이로, 그땐 기차로 왔지만 오늘은 고속버스로.....

 

 간간이 밀려오는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손 지갑을 꺼내 주소가 적힌 종이를 가만히 펼쳐 본다. 이모 주소 밑에 적힌 주소에 '정 경 식'이란 이름이 왠지 낯설지가 않은 느낌이다. '정 명 언''정 경 식'그렇다면 혹시...친아버지 아닐까?
술에 취해 빨게 진 얼굴로 웃으며 '이제부터 이 아줌마가 네 엄마야'하던 아버지가 생생이 눈앞에 아른거려 가슴이 저려 오는 거 같다.

 

<그러지 말아야 했어요.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었어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 내가 학교 보내달라고 보채기라도 했던가요? 설사 그랬다해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고요. 아버진 싫어요. 절대로 보지 않을 거예요. 엄마 아버지보다 내 동생들이 보고싶어 찾아가는 거라고요.>

 

 눈물 때문에 창 밖이 흐려져 버렸다. 눈물샘이 터져 버렸는지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걸 그녀는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휴게실에서 한번 쉬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도 버스는 자꾸만 달린다.

 

<이렇게 먼 곳이었던가 다섯 시간 째 가고 있는데도 좀더 가야 된다니, 이렇게 먼 곳으로 아버지는 나를 보내 버렸단 말인가.>

 

 서울 종점터미널에서 안내원에게 주소를 보이니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아는 데로 가르쳐 주었다. 버스를 타고 안내양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는지 운전기사에게 다시 물어보고 와서는 모르겠단다. 조금 가다가 내리고는 다른 버스로 갈아타기를 몇 번해도 오래된 주소라 잘 모른다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설레 임이 커다란 두려움으로 그녀를 더욱 춥고 피곤하게 만든다. 커다란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허기가 진다. 그러고 보니 우느라 휴게실에서 아무 것도 사먹지 못한 것이 생각난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밥을 시켜놓고 식당 주인아줌마에게도 주소를 보여 주었다.


"부산에서 올라와 초행길인데요. 이 주소지를 찾고 있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요. 혹시 이런 동네를 아시는지요."


메모지를 한참 들여다보던 아줌마는 고개를 저으면서


"알 듯 하면서 잘 모르겠는걸."


 배는 고프건만 밥알이 입안에서 씹히질 않는다. 그래도 기운을 차려야 하겠기에 억지로 따뜻한 국물에 밥을 조금 말아서 먹기 시작했다. 그 때


"아이고 참! 맞다. 택시를 타고 기사한테 물어 보슈. 택시기사들은 구석구석 다니니까 잘 알 거 아니유?"


"그렇군요. 고마워요 아줌마."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식당을 나왔다. 오후가 되면서부터 흐려지는 것 같더니 추위가 옷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부산보다 바람은 별로 불지 않는다.


<눈이 올려나?> 


택시가 한 대 알아서 그녀 앞에 세웠다. 얼른 차에 올라타고는 어디 가느냐는 물음에 종이를 보였다.


"여기 가는데요. 아시겠어요?"


"어디 보자... 어디서 많이 들은 동네이름인데 기억이 잘 안 나네...어디더라. 요기...고개 넘으면 동사무소가 있는데 거기 가서 물어봅시다."


 조금 가더니 00동사무소라고 적힌 간판이 보이자 그 앞에 차를 세우고 기사가 내린다.


"추우니까 차안에 앉아있어요. 내가 가서 물어보고 올 테니까요."


기사가 동사무소 안을 들어가고 유리창에 빗방울이 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한다.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는데 성급하게도 보슬비가 내리는 것이다.


"찾았어요. 이 고개 넘으면 있다는데 가다가 다시 물어 봅시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웠다. 비를 맞았는데도 불평 한마디 없이 밝은 웃음으로 그녀보다 더 기뻐하며 말하는 것이다. 아까 까지는 몰랐는데 여기는 서울에서도 아주 변두리인 것 같았다.

 

 고개 양쪽으로 동산같이 얕은 산이 있는 걸 보니  산을 깎아서 이 길을 만들었나보다. 고개를 완전히 넘어가니 양쪽이 들판이고 저 앞에 조그만 기와집 한 채 가보이고 사람들도 보였다.


"저 집이 옛날에는 주막이었답니다. 사람들이 이산 고개를 걸어서 넘어와서는 저 주막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곤 했다지요. 그래서 지금 이 길을 주막 골이라 한답니다. 허허허...저 멀찌감치 보이는 동네가 바로 아가씨가 찾는 동네랍니다. 허허허..."

 

 사람들 가까이 차를 세우고 유리창을 내리고 그 들에게 물었다.


"저..혹시 말씀 좀 묻겠는데요. 저 동네에 사는 '정 경 식'씨라고 아십니까?"


 기사 얼굴에 빗방울이 맺혔다. 추워서 귀까지 빨개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저씨가 고맙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추운지 몸을 움츠리며 차안을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아이구 알다 뿐이요. 저 동네 입구 바로 왼쪽에 있는 첫 번째 집 이예요."


"아! 녜 녜 고맙습니다. 아이고 아가씨! 저기보이는 왼쪽 첫 번째 집이래요. 얼른 갑시다."


고맙기도 그녀가 더 고맙고 마음이 조급해도 그녀가 더 한데 기사는 덩달아 신이 나는가보다. 너무 고마운 아저씨다.
 
 비도 어느새 그치고 대문 앞에 차를 세웠다. '정경식'이란 문패가 걸려있다.

그녀는 고마움에 차비에 팁을 더 얹어주었더니 아저씨는 미안해하면서 받았다. 택시가 멀리 사라지도록 서 있다가 가방을 끌고 대문을 살며시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