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단골손님
오후까지는 장'중년층의 손님들이 많았고 저녁이 되면서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왔다.
분위기 따라 음악을 들려주고 음악실에서처럼 신청 곡도 받고 간간이 멘트를 섞어 보냈더니 의외로 반응이 좋았고 인기도 좋아
그녀에게 커피를 사주는 이들도 많았다.
언니들도 좋아라 하며 잘해 주셨고 덩달아 손 양도 신이
났다. 미스 리가 제 친구라고 했더니 소개 시켜 달라고 찾는 사람들 땜에 신났고 덕분에 매상 팍팍 올려
신났다.
손 양은 자그마한 체구에 귀엽게 생기고 애교도 많았다. 남해가 고향이고 부모들은 나이가 많아 농사
지어서 동생들 뒷바라지하기 힘들어 작년에 부산으로 취직하러 왔다가 직업 소개소에 사람 구하러 와있던 큰언니 눈에 띄어 사정 얘기를 듣고는 객지
나와서 잘못하면 나쁜 길로 빠지게 된다며 데리고 왔단다. 집에는 회사 다닌다고 하고 월급타면 꼬박꼬박 부모님께 돈을 부친다.
손님이 한꺼번에 들어와 손이 모자랄 땐 윤정 이도 차
주문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손을 잡거나 엉덩이를 두드리는 짓궂은 단골손님들도 있어 처음엔 당황했었다. 그럴 때면 언니들이 나서서 손님들을 혼내
주신다.
"애도 내 동생이니깐 함부로 하지
마세요."
놀란 손님들은 미안해하면서 그녀에게 차를 권하는데 안 마실 수도 없고
매상은 올려야되니 억지로라도 마셔야 했다.
그런 저런 일들도 몇 달이 지나다보니 익숙해져 당황하는 것도 없어지고 오히려 재치 있게 넘기는 방법을 터득해서 이제는 이일이 재미있어졌다.
아침밥은 아래 식당에서 매일 가져온다. 각자 하고 싶은
얘기는 아침밥을 먹으면서 하게된다. 점심과 저녁밥은 언니들은 주로 단골손님들이나 작은언니 애인이 오면 나가서 먹고 다른 사람들은 각자 먹고 싶은
거 시켜 먹기도 하고 간단하게 시장 봐서 주방에서 해 먹기도 한다. 그게 오히려 돈도 작게들고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침밥값은 언니들이
한 달에 한번 식당에 계산해 준다.
여기서 말하는 단골 손님들은 언니 나이와 비슷하거나 훨씬 많은
60대도 있다.
무슨 사장님들이 일을 하면서 돈을 벌지 않고 다방에 죽치고 앉아 노닥거리지 않으면 방에 들어가 화투를 친다.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단골 손님 떨어지지 않으려면 더러워도 참고 비위 맞추는 거라고 언젠가 언니들도 속 상해 하면서 하던
애기다.
여름이라 날씨도 덥고 하니 모두 바닷가나 계곡으로 다 빠져 나가버렸는지 어쩌다 하나 둘 들어오는
사람들뿐 다방에 손님이 뜸해졌다.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김군 이랑 손 양과 수족관 앞에서 금붕어 먹이를 주며 이 얘기 저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시끌벅적 큰 소리를 치며 들어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세 명의 단골손님들이다.
"와 이래 조용하냐?. 이래가 우째 밥 먹고살래 응? 오늘 우리가
매상 올려 줘야 되겠구만. 깡그리 쌍화차 로 갖고 온나. 너거도 한잔씩 마셔뿌라. 기분이다 마."
다른 손님들이 없으니 그런지 그들은 마음놓고 떠든다.
차를
마시고 여느 때처럼 그들은 방으로 들어간다. 또 화투를 칠 모양이다.
몇몇 손님들이 왔다가고 윤정 이는 손 양과 주방으로 가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김 군은 작은 키라도 운동을 해서 그런지 상체는 큰 편이다. 라면도 두 개는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그녀들이 먹는 그릇을 넘본다. 윤정 이는 김군 에게 조금 덜어주었다.
"역시 니는 뭔가 아는 거라. 내 아니었으모 니는 그 날 죽었을 낀데
내 땜에 살았으니 까네 내한테 잘해라 그런데 그날 안고 오다가 고마 키스를 팍 해 삘라 다가 말았는데 내가 양심이 바르다 보니깐 그런기라
고맙다케라."
"아이고!! 고마울 게 그리도 없을까. 토하고 엉망이라서 못했제
양심은 얼어죽을 양심. 키스할 용기라도 있으면 몰라도."
"이 가시나가 또 오빠를 놀리제 그라모 지금 키스
해보까?"
둘은 옥신각신 하면서도 짓궂은 장난을 잘 쳤다. 김 군이 와락 손
양을 안으려 하자 비명을 지르며 후다닥 홀 쪽으로 도망을 간다.
"그 날은 정말 고마웠어요."
윤정 이는 설거지를 하면서 김 군에게 못했던 인사를
한다.
"고마운 거 알았으모 됐다. 사람이 죽고 싶다고 죽어지나. 그런 거
같았으모 내는 열 두 번은 더 죽었는거라. 절대로 죽을 생각은 하지마래이 만약에 죽고 싶으모 내한테 먼저 얘기해라 죽기 전에 내가 그때 못했던
키스를 팍 해뿔기다. 그래야 몽달귀신 안된다이가."
"어이그! 못 말려."
그녀는 손에 묻은 물을 김 군에게 뿌리며 주방을 나왔다.
그때
방안에서 김 군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 군아! 중국 집에 탕수육 시키고 맥주도 한 상자 가져오고
마른안주하고 과일 좀 가져와라."
단골손님들이 방에서 자주 마시기 때문에 양주나 맥주, 마른안주와
과일은 항상 준비되어 있다. 방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화투판이 벌어져 있고 만원 짜리 들이 여기저기 수북했다. 탕수육은 큰 걸로 세 개를 시켰다.
늘 그랬기 때문이다.
탕수육 하나를 주방 가까운 테이블에 차려놓고 셋이 앉아 막 먹으려 할 때 방에서 큰언니가 윤정 이를
불렀다.
"미스 리! 이리 잠깐만 들어 와봐라. 사장님들이 동생을 정식으로
인사 시켜 달란다. 들어와서 인사 드려."
내키지는 않았지만 거절할 수가 없어 방으로 들어갔다.
"이 윤정입니다."
뻘줌이 서있는 작은언니는 그녀를 앉으라는 눈짓을 하더니 슬쩍 나가
버렸다. 큰언니 옆으로 가서 앉았는데 치마가 짧아서 자꾸만 신경이 거슬러 방석으로 무릎을 가렸다.
"미스 리 술 한잔 만 하지."
손님 중 한 사장이란 분이 술잔을 내밀었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망설이는 윤정 이에게 큰언니가 술잔을 쥐어주었다.
"사장님! 얘는 술을 못 마시니까 조금만
줘요."
반잔 따려진 것을 한 모금 마시니 그 정도는 다 마시란다. 내친 김에 홀짝 마셔 버렸더니 잘 마신다며 박 사장님도 천 사장님도 돌아가며 따라 주었다. 반잔씩이었지만 약간 어질어질 한 것 같다. 순간 이렇게 앉아있는 자신이 우스꽝스러워 졌다.
<이게 아니었는데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지? 이대로 그만 추락 해 버리는 걸까? 안돼! 그럴 순 없어!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망가져야 돼?
안돼! 안돼!>
그녀는 화장실 가야 된다며 일어났다. 순간 가까이 앉아있던 한 사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그녀를 벌떡 두 팔로 안아 들었다.
"얼굴은 예쁜데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노
보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큰언니도 깜짝 놀란 표정이다. 다른 손님들은
부러운 듯이 웃으며 쳐다 보고있다.
"한 사장님! 장난 그만 치고 내려놓으세요."
치마가 짧은데 안겨있으니 윤정 이의 엉덩이는 그대로
사람들의 눈요깃거리가 되어버렸다. 한 손으로 엉덩이를 가리려 해보지만 헛수고 일 뿐이다. 빨리 내려 달라고 발버둥을 쳐도 큰언니의 말에도 한
사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바퀴 휙 돌고 나서야 내려놨다.
그녀의 몸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고 수치심 때문에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큰언니가 원망스럽다. 울면서 뛰쳐나와 주방에 있는 김 군 방으로 들어가 펑펑 울었다. 엄마한테 맞을 때 외에는 이렇게 크게 많이 울어본 기억이 없다.
큰언니가 뒤따라와서 미안하다고, 그런 일이 생길 줄 몰랐다고 해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저 눈물이 나왔다. 한참을 울다가 멍하니 창 밖을 본다.
<엄마....>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다. 그렇게도 미운 엄마가, 악마처럼 보이던
엄마가, 불쌍하게도 배신당하고 알거지가 된 바보 같은 엄마가.....
<엄마! 엄마! 미안해요. 엄마 버린 나 여기 있어요. 여기서 엄마 버린 죄 값 치르고 있나봐요.>
눈물샘은 얼마나 크기에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눈물이 마를
때쯤에 김 군이 들여다본다.
"실컷 울었나? 세상이 어떤 것인지 인자 알것나. 울고싶을 때는 실컷
울기라도 해야제. 남자들은 다 짐승 인기라 잊어뿌라. 앞으로 살다보모 그건 아무 것도 아니데이."
"그럼 김군 오빠도 짐승이야?"
"응? 아이다 내만 빼고 다른 자슥들 말이제. 아이고 가시나 울고
나니까네 귀엽네 뽀뽀 해뿌까."
"쳇! 말도 안돼!"
윤정 이는
수족관 옆 테이블에 앉아 이름 모를 물고기를 본다. 금붕어, 잉어 종류는 알겠는데 잿빛이 나는 긴 물고기는 이름을 모르겠다. 물고기들은
수초사이를 오가며 연신 입을 뻐끔거린다.
뮤직박스 쪽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걸 보니 단골손님들이 나가는가
보다. 저쪽에서 이쪽은 보이지 않기에 그녀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여기 앉아 있었네."
윤정 이를 찾으러 주방에 들어갔었는지 큰언니가 주방에서 나오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있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미안하다는 말 과함께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한 사장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뜻으로 미스 리 용돈 하라고
주고 가셨어 받아둬."
"싫어요. 큰언니가 받으세요. 저는 이런 돈
싫어요."
"알아.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내가 사장님한테 순진한 애를 놀라게
해서 어떻게 할거냐고 야단쳤더니 그렇게까지 순진한지는 몰랐다면서 미안하데, 나중에 오면 다시 사과 하겠다는군. 이거 안 받으면 내가 더
미안해지잖아. 이건 받아도 괜찮은 거다."
다시 얼굴을 보고 싶진 않다. 큰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할
수없이 봉투를 받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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