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자전적 소설/◈연재소설-1.날고싶은 새(종결)

연재;날고싶은 새<30> 오해한 거 아냐??

보라비치 2005. 11. 3. 10:31

30. 오해한 거 아냐?

 

"아줌마! 우리 집에 빨리 좀 와 주세요. 빨리요."


지네 엄마랑 형서의 사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윗동네 여자의 두 딸들은 윤정 이를 퍽 이나 따랐다. 엄마는 얄밉지만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일요일이라 남편은 나가고 없고 일거리도 없어서 쉬고 있는데 그 아이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끊어버려 애들은 남겨두고 급히 뛰어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전화는 잘 안 하는 애들이 그러지?>

 

집안이 조용 한 걸 보니 별다른 큰 일은 없는 것 같아 안도의 숨을 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을 열면 바로 안방이 나오는데 아이들이 보이지 않아 안방 문을 열었더니 커다란 이불 무덤이 있다.

애들이 모두 그 속에 숨어 장난을 치는가싶어 조심조심 다가가 이불을 휙 걷어내자 윤정 이는 아연 실색 하여 소리가 나오려는 걸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형서와 여자가 아랫도리들을 반쯤 벗은 체로 잠들어 있는 게 아닌가.

이불을 재껴도 모르는 걸 보니 술이 아주 많이 취했나 보다.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가운데 미닫이문을 열고 옆방에 들어가니 딸아이 둘이서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아줌마! 무서워요. 울 엄마랑 아저씨랑 왜 저래요? 우리 어떻게 해야 되요? 아줌마!"


"울지 말고 내말 잘 들어. 엄마랑 아저씨는 아주 친한 친구야. 그런데 너무 친하다보니 술이 많이 취해서 장난하는 거야. 우리 집 에서도 그랬는걸.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니까 너희들도 아줌마만 믿고 걱정하지 말고 옆에 이모 집에 가서 놀아 알겠지?"

 

 역시 아이들이라 찬찬히 달래니 말을 잘 들었다. 바로 옆집이 여자의 언니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애들을 그리 보냈다. 이 일을 어떻게 스습을 해야 될지 눈앞이 감감하다.


"이봐요 아줌마! 아저씨! 정신들 차려봐요."


 몇 번을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면 차마 내 앞에서 눈뜨고 일어날 수가 없어 자는 척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건 사람이 아냐. 개새끼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여기서 하면 어떻게 해. 아이들이 보고 있는데 정말 무슨 짓들이야? 그렇게 좋으면 따로 살림을 차리던지 여관에 나 들어가지 이게 뭐야."


윤정 이는 이 기회다 싶어 형서와 여자의 뺨을 왕복으로 때려버렸다. 그래도 여자는 꼼짝을 않는데 형서는 벌떡 일어났다.


"아니 옷이 왜 이 모양이야?"


"여기가 어딘 줄 아세요? 애들이 보고 있는데 부끄럽지도 않아요? 창피 한 줄 알아야지."


 바지 허리춤을 바로 하더니 술이 덜 깬 얼굴로 윤정 이를 빤히 쳐다본다.


"아니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몰라서 물어요? 애들이 놀라서 전화가 왔었어요. 와보니 두 사람 가관이더구만요. 대 낯부터 술이 취해 설랑 애들 보는 앞에서 옷 벗고 무슨 짓 이예요 이게."


"뭐야?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네가 이젠 여기까지 남자 만나러오는 모양이지? 어떤 놈하고 뭐 하다 왔어. 이 개 같은 년아!"


"미안하면 차라리 아무 소리나 말지 엉뚱한 말로 사람 잡지 말아. 나 붙잡지 않을 테니 이대로 저 여자랑 나가 살아. 이 집 애들 내가 키워 줄 테니까 말야. 이 개새끼 같은 놈아."


 
 늘 몸이 아픈데다 잘 먹지 않아 힘이 없는 윤정 이는 형서가 발로 차버리자 종이 장 날아가듯 날아가 구석에 쳐 박혔다. 그러자 형서는 엎드려 있는 그녀 등위에 걸터앉아 뒷머리를 마구 때렸다. 일어나려 발버둥치다 바로 눕게되니 다시 배 위에 앉아 얼굴을 때렸다.


<이게 마지막이야. 더 이상은 싫어. 차라리 이대로 오늘 죽어 버렸으면...>


형서가 때리는 데로 가만히 맞고만 있으려니 창 밖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애들. 불쌍한 우리 애들.>


순간적으로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모른다.


"안돼! 이대로는 너무 억울해! 네 놈부터 죽여버리고 죽을 거야."

 

 그녀는 두 손으로 형서의 목을 휘어잡고 조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그녀 행동에 놀란 형서는 그녀의 팔을 잡아 때려 했지만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그녀의 손은 잘 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윤정 이는 힘이 차츰 빠지면서 손가락 하나가 형서의 입으로 들어가자 그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물고 늘어졌다.


"아 악!!!"


 비명을 질러대며 형서의 뺨을 후려치니 입을 벌렸다. 그때 옆집에 사는 여자의 언니가 들어와 형 서를 밀쳐내고 윤정 이를 일으켰다. 윤정이 손가락은 뼈가 부러 졌는지 어쨌는지 구멍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너무 아파 감각도 없이 손가락은 금새 몽둥이만 하게 부어 올랐다.


"왜들 이러노. 애들을 생각해야지. 애기 엄마 정신 차리고 우리 집에 가자. 이러다간 맞아 죽겠다."


 형서의 목은 손가락 자국으로 벌겋게 피가 맺혔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자빠져 있는 꼴이 먹이를 잡아먹은 야수와 같다.

이 꼴로 집에 갈 수도 없거니와 한 발 자국도 옮길 힘이 없어 여자언니의 부축을 받으며 옆집으로 갔다. 여자언니는 혀를 끌 끌차면서 윤정 이의 얼굴을 닦아주고 약도 발라 주었다. 언니라는 사람조차도 쳐다보기 싫지만 지금은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인간들 때문에 자신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


"이럴 수는 없어요. 어른들이야 미친개들이니 어쩔 수 없다 지만 애들이 상처  받잖아요. 차라리 둘이 멀리 떠나라고 하세요. 언니 가 예기하면 들을 지도 모르   잖아요. 부탁 이예요"


"무슨 말이 유? 애기 엄마가 무슨 오해를 한 거 같은데 두 사람 그런 사이 아냐.
내 제부하고 한 사장은 형님 동생 하는 사이고 제부가 외국 나가기 전에 한 사장 사무실에서 영업부장으로 잠시 일했다 더만 제부도 처음엔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서 문을 닫아버렸는데 마침 한 사장이 부장자리가 비었으니 도와달라고 해서 서로 상부 상조하는 셈으로 거래처 관리 등을 맡아 했었데요. 그러다 마침 친구가 외국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는데 같이 해보자고 해서 제부는 외국 나갔고, 한 사장이 동생한테 급한 돈을 조금 썼나봐 그래서 둘이 자주 만났던 거지 다른 관계는 아니 예요."

 

 언니라는 이 여자는 형서와 자기 동생과의 깊은 관계까지는 몰랐었던 모양이다.


"말도 안돼 정말! 동생 일이라고 알면서도 시침 때는 거죠 지금? 아니 이해가 안 가요. 언니 라면서요 바로 옆집에 살면서 어떻게 몇 년 동안이나 아무 것도 모른 단 말이죠? 저의 동네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여기서 얼마나 된다 구요."

 

윤정 이의 오늘 기가 막힌 사건도 적나라하게 늘어놓으니 설마만 되 뇌이면서 믿어지지가 않는 모양이다.


" 정 못 믿으시면 애들 불러서 물어 보세요. 증인이니까요."


"아이고 이 미친년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세상에! 이일을 인제 어쪄. 한 달쯤 있으면 제부도 나올텐데. 아이고 골치야. 그년이 완전히 미쳤어야. 아니 애기 엄마도 그렇지 진작에 나한테 좀 귀 띰이라도 해주지. 그랬으면 요렇게 크게 벌어지지는 않았을 거 아니 유. 아유 답답해. 나는 그것도 모르고 왜 부부 싸움을 남의 집에서 하나 했지."


 망연자실하게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모습이 진짜 몰랐었나 보다.


"미쳤구만! 미쳤어! 그러니까 애기 엄마가 마음가라 앉히고 정신을 차려야지 애들은 어쩌구! 거기서 왜 그렇게 맞고있어 얼른 피해야지 맞으면 나만 손해 잖수. 아저씨가 술이 많이 취했으니까 깨고 나면 내가 잘 말하리다. 집에 가서 좀 누워 있어요. 술 깨고 나면 내일아침 일찍 내가 동생하고 내려가리다. 아이고 온 몸이 엉망이네. 내일 병원에 가봐요,"

 

 집으로 향하는 걸음은 천근 만근이고 물린 손가락은 욱신거렸다. 집에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아이들 한 테는 넘어졌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이불을 둘러쓰고
누웠다.

남들은 울 때 '엄마'하고 운다 던 데 윤정 이는 한번도 엄마를 부르면서 울지를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를 부르고 싶다.

 

 <엄마! 왜 날 낳았어! 나 너무 힘들어! 대체 내가 무슨 죄를 많이 졌기에 이런 고통을 주는 거예요? 죽는 건 두렵지 않은데 죽지도 못하고 이렇게 고통을 받으니 너무 힘들어! 어떡하면 좋아요. 제발 나 좀 어떻게 해줘요.>

 

 울다가 잠이 들었는지 인기척 소리에 눈을 떴다. 시간이 벌써 자정이 다 되었다.


"거기서 살지 왜 왔어요?"


"무슨 소리야?"


"지금 내 꼴 좀 보세요. 이게 사람 모습 같아요? 나 괴롭히지 말고 제발 부탁이니 차라리 나가서 그 여자랑 살아요. 내가 나갈까요?"


"왜 그래? 얼굴이 왜 그러냐고"


"기억 안나요? 당신이 날 두들겨 패서 이 모양이잖아요. 사람도 아냐. 애들 보는 앞에서 그 짓을 하다니. 내 남편이 바람은 피워도 그렇게 까지 미쳐 버린 줄은 몰랐어요. 이젠 당신한텐 조금의 미련도 희망도 없어요. 끝이라고요."


"내가 뭘 어쨌는데 그러냐? 내가 왜 널 때렸는데?"


"그 여자 언니가 얘기 안 하던가요? 한통속인가보지?"


"술이 너무 취해서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 그냥 당신 왔다갔다고 하던데? 그런데 아무 기억도 안나. 내가 왜 때려? 모르겠어."


 윤정 이는 가슴과 등 손가락 등 상처를 다 보여줘도 기억이 없다는 말만 한다.


"좋아요. 내일 그 여자아이들하고 옆집언니하고 내려온다고 했으니 물어 보면 되잖아요."


"그 사람들이 왜 온데?"

 

 다음날 오전에 일찌감치 여자와 언니가 왔다. 낯짝도 보기 싫어 돌아 앉아있으려니 사 들고 온 술과 음료수를 꺼내 한잔씩 따랐다.


"애기 엄마! 미안해요. 내 동생이 실수를 한 모양인데 용서하고 이리 와서 한잔합시다."


"실수라고요? 애들 앞에서 그런 짓이 실수라고? 그리고 당신들 두 사람 때문에 내가 이 무슨 꼴 이예요. 나 우리 애들만 아니었으면 경찰서 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난 내 가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어요. 나는 어찌되어도 괜찮지만 내 아이들 가슴에 상처주기는 싫다 구요. 부탁이니 두 사람 같이 나가서 살던지 말던지 제발 내 눈앞에 띄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동생이 오해한 거 아냐? 난 도저히 기억이 없는데"


"나도 기억이 안나."


"두 사람 벌써 그러자고 짰어요? 기억이 없다니 말도 안돼 아이들 내려오라고 하세요. 아이들이 두 눈으로 보고 있었어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자 그리고 이 상처는 뭐죠? 두 사람일에 왜 자꾸 나를 끌어 들여요. 나 간섭하지 않잖아요. 더 이상은 참지 않을 거예요. 꼴 보기 싫으니까 다나가세요. 안 나가면 내가 나갈 거예요."

 

 윤정 이가 벌떡 일어나 뛰어 나가자 여자가 뒤따라 쫓아 나와서는 윤정 이의 팔을 잡고는 방으로 데려갔다. 아무리 뿌리치려해도 힘이 없어 팔을 뺄 수가 없었다. 여자가 힘이 센 것인지 윤정 이가 힘이 없는 건지....


"잘 못했어! 동생! 다시는 형서 씨 안 만날 거야. 정말이야. 날 찾아와도 돌려보내고 나도 다시는 오지 않을게 우리 언니하고도 약속했어. 며칠 있으면 우리 수민이 아빠도 오니까 절대 안 만날 거야."


"애기 엄마! 용서 하시구랴. 나이도 어린데 이렇게 깊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다니 미안해요. 용서한다고 한마디만 해줘요."


"용서라고 했나 요? 내 가슴에 쌓인 한 은 어쩌구요. 내가 얼마나 많은 피 눈물을 흘렸는데 이제 와서 쉽게 용서라는 한마디로 끝내겠다 구? 나쁜 인간들. 그리고 내가 용서한들 무슨 소용 이예요. 아이들이 입은 상처는 요."


"사실은 처음엔 내가 아니고 한 사장한테 다른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자꾸 살림을 차리자고 했데. 둘이 너무너무 사랑했다나 그래도 한 사장은 조강지처인 동생을 버릴 수 없다면서 거절을 하고 헤어졌는데 그 여자 딴 남자하고 살다가 병이나 죽었는데 죽을 때 병원에서 한 사장을 그렇게 찾았다네. 그걸 알고 괴로워하는걸 내가 달래 주다가 그만 이 지경이 되었어. 나도 넘어 간 거라고. 나 말고도 여자 많아. 동생도 앞으로 정신 바짝 차려야 될 걸."


"아니 지나간 얘기를 지금 왜 꺼내는 거야?"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 내가 죄인이지만 한 사장만 믿고 지금까지 말없이 살아주는 동생이 너무 불쌍해서 그래요. 동생 잘못했어. 미안해 정말이야 용서 해줘."


"알았소. 모두 내가 잘못했어. 알았으니 이제 그만 합시다."


"댁들은 지금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되겠죠. 정말 모두 치졸한 사람들 이예요."


"그럼 날더러 어쩌란 말야. 미안하다고 하잖아. 미안해."

 

 그러나 인연이 그리 쉽게 단숨에 끊어지나?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형서는 그 여자를 찾아가던지 만나자고 전화를 해도 일절 약속대로 형서를 만나주지도 않았고 찾아오지도 않았다.

형서가 그 여자 집에 찾아갔다가 그 집 식구들 모두에게 냉정하게 내쳐지자 졸지에 무시를 당하는 것에 견디지 못하고 한동안은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다.

윗동네에서 내려오는 길 옆 도랑에다 구두를 벗어 던지며 고함도 지르고 술이 취해 길가에서 쓰러져 있기도 했다. 그때마다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나오는 눈물을 씹어 삼킨다.

 

 <이년의 운명아! 이 더러운 운명아! 언제까지 나를 괴롭힐 작정이냐! 나는 널 꼭 이기고 말 거야 알아?>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