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자전적 소설/◈연재소설-1.날고싶은 새(종결)

연재;날고싶은 새<29>개 같은 인생아!

보라비치 2005. 11. 1. 12:16

29. 개 같은 인생아!

 

 연말이 되니 남편은 모임이 많아졌다. 부도가 나고 친구들 모임에 잘 나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친구들 망년회에 참석 할 모양이다. 그것도 부부동반 이란다. 친구들이 형서 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했었지만 그럴 때마다 자존심 강한 형서는 단호히 거절을 해 버렸었다. 그런 성격을 잘 아는 고향친구들이다 보니 별 오해 없이 넘어갔다.


"당신 너무 과민 반응 아닌가요? 그 분들은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인데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면 안 되요?"


"시끄러워!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친구들 도움은 안 받아."


"당신만 생각할게 아니고 아이들 생각도 좀 하세요."


"지금 굶는 건 아니잖아. 인간 한형서 절대로 친구들 도움은 안 받아."

 

<인간 한형서 좋아하시네. 친구들 도움은 자존심 땜에 받기 싫으면서 남의 여편네 도움은 어떻게 받냐? 이기주의자!>

 

 윤정 이도 오랜만에 남편이랑 모임에 참석하게 되어 썩 내키지는 않으면서도 조금은 설레 인다.
모임은 뷔폐에서 열렸고 오랜만에 나타난 형서와 윤정 이를 그들은 대 환영 하며 맞아 주었다. 형서는 여러 친구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하고 서로 환담을 하며 술잔도 오고 가며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제수 씨! 언제 봐도 제수 씨는 참말로 너무 아름답네요. 아까 문에서 들어올 때 나는 영화배우가 들어오는 줄 알았다입니꺼. 형서 저놈은 복도 많 제. 이래 아름답고 예쁜 마누라하고 사니까네 말입니다. 하하하..."


 저쪽 편에서 형서가 째려보고 있었다. 윤정 이는 눈을 돌려 버렸다. 가슴이 깊이 파인 검은 드레스가 어색해 자꾸만 손이 가슴으로 가진다. 모두들 술이 거나하게 취했고 대화는 무르익어 갈 때쯤 뷔폐 영업시간 때문에 그 들은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 만나기를 약속하며 일어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형서의 친구들이 다시 형서를 놀린다.


"너 임 마! 이래 가슴도 크고 예쁜 마누라하고 산다고 뻐기지 말고 자주 데리고 나와라. 알겠나. 나도 제수씨 가슴 한번 만져봐야 안되겄나 하하하... 제수씨! 오해하지 마이소. 농담이라 요. 이놈도 그전에 우리 집사람 가슴도 만지고 그랬심더."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자리를 깔고 있는 윤정 이에게 형서는 입을 열었다.


"그 놈이 언제 당신 가슴 봤지?"


"네? 무슨 말 이예요?"


"아까 그놈이 너보고 가슴이 크다고 했잖아. 그놈한테 언제 보여 줬냐 구 말해."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농담이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당신은 그사람 부인 가슴도 만졌다며..."


"그래서 그놈이 보여 달라고 하디? 그래서 보여줬어?"


"당신 이상해요. 왜 이래요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오해하지 말아요. 그 사람 입으로 맘대로 하는 말인데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하란 말예요."


형서는 뭔가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아내를 노려봤다.
그날 이후에도 형서는 여전히 여자와 만나 술 마시다 억지로 윤정 이를 불러내 술도 먹이고 그녀 앞에서 둘이 싸움도 해댔다. 자리를 피하고 싶어도 그러면 때리기 때문에 맞지 않으려고 그냥 참는 것이다. 형서는 아내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남편이 미워서도 끝까지 그들을 지켜보는 것이지만 터질 것 같이 미어지는 가슴은 커다란 바위로 짓이겨 지는 심정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형서는 평소와는 다르게 변한 것이 있었다. 부엌엔 수도가 없어 바로 부엌문 밖에 있는 수돗가에서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방에서 형서가 불렀다. 방문을 열고


"왜요?"


"뭐 하는데?"


"설거지해요."


 다시 나와서 그릇을 씻고 있는데 형서가 또 불렀다.


"아니 왜 그래요?"


"너 지금 뭐 하지?"


"설거지 한댔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려? 어디서 하는데"


"당신 이상해. 방금 밥 먹고 이제 막 설거지 시작하는데. 그리고 어디는 요. 수돗가에서 하지."


"음 그래?"


 남편의 행동이 의아해서 왜 저러는지 몰라 그대로 다시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쨍 그렁하면서 방문 아래 유리가 깨졌다. 윤정 이는 놀라서 방에 뛰어 들어 갔더니 남편의 발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발로 찬 모양이다.


"아니 왜 그래요. 유리는 왜 발로 차서 깨고 그러세요?"


"너! 밖에서 뭐 했어. 남편이 방에 있는데 밖에서 뭐 하길 레 빨리 안 들어와. 어떤 놈이라도 만났어?"


"나 참 기가 막혀. 바로 코앞에서 설거지하는 거 봤잖아요. 당신 이상해 정말"


 다락에 있던 아이들이 놀라서 울었다. 뜻밖의 행동에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 아이들을 먼저 달랜다.


"아빠가 엄마 빨리 보고싶은데 설거지를 오래 하니까 화가 났나봐. 아빠가 엄마 되게 많이 사랑 하나봐 그치?"


 다행히 아이들은 금새 기분이 좋아 졌다. 역시 아이들이라 단순하고 순진 한가보다.
어린아이처럼 피나는 발을 쭉 뻗고 앉아 있는 형 서를 보니 화가 나기도 하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 지금 따지면 또 때리겠지? 참아야지>

 

"금방 들어올텐데 그새를 못 참았어요? 아유! 이게 뭐야. 발에서 피가 나잖아요. 아프죠? 약발라 줄 테니 가만있어요."

 

 윤정 이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꾹꾹 참으며 아이 다루듯이 부드럽게 피를 닦아주며 약을 발라준다. 형서는 어린애처럼 발을 내밀고 가만히 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 또 다음엔 더 황당한 일이 있었다. 화장실 문이 집안에 없고 밖에 문이 있어 어느 날 밤 윤정 이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일어서려는데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안에서 잠그는 장치라곤 가느다란 끈으로 못에 거는 것 뿐이라 끈이 뚝 떨어져버렸다. 옷을 추스리던 윤정 이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형서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고 서 있는 게 아닌가.


"너 거기서 옷 벗고 뭐 하는 거야."


"왜 그래요? 화장실에서 뭐 하기는요. 똥누죠."


형서는 가져온 후레쉬로 화장실 안을 비춰본다.

 

<이 남자가 왜 이러지? 혹시 미친 거 아냐?>


"바른 대로 말해. 분명히 안에 누가 있었어."


"변소 안에 나 혼자 있었지 누가 있어요."


"화냥년!"


갑자기 형서는 윤정 이의 머리 체를 잡고는 담벼락에다 밀어 제 끼며 쥐어박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머리가 부서지는 듯이 아팠다. 졸지에 변소에서 볼일 보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이냐.


"홀딱 벗고 뭐 했어."


"당신 미쳤어요? 볼일 볼 때 옷 내리고 보지 옷 입은 체로 볼일 보는 사람도 있어요?"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아내를 노려보는 형서의 눈빛은 이글거리는 이리 눈과 같이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가만히 생각 해보니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괜찮은데 술만 조금 취한 날이면 꼭 사고 가 나는 것이었다. 그걸 눈치 첸 윤정 이는 될 수 있으면 남편이 술 취한 날이면 신경이 곤두선다.

 

 여느 때처럼 그녀는 늘 하던 부업거리를 물리고 방안 청소를 했다. 저녁을 하기 위해서다. TV를 틀어놓고 청소를 하다보니 재미있는 방송이 나와서 손을 멈추고 서서 한참을 보고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머리를 내리치는 바람에 너무 놀라 방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야 이년아! 남편이 들어오는데도 뭐 하느라 쳐다보지도 않아?"


 형서는 창문 밖을 유심히 내다보며 또 닥 달을 해댄다. 창문 밖은 왜 보는지 몰라도 뒷집이 바짝 붙어있어 어린아이도 겨우 옆 걸음으로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분명히 어떤 놈이 있었는데 내가 들어오니까 금새 도망을 갔단 말야. 분명히 소리가 들렸는데."


"TV 틀어져 있었잖아요. 그리고 사람이 있었으면 어디로 도망간다고 그래요. 당신 이상해 졌어요. 의처증인 것 같은데 바람은 자기가 피우면서 왜 나를 의심하고 그래요?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뭐야? 그럼 내가 정신병자란 말야? 이게 말이면 다야? 어디서 발뺌하려고 그래?"


그때 윗동네 여자가 왔다.


"시내 볼일 보러 나가다가 들렀어. 잘 있나 보고 싶어서. 이거 애들 줘 과자 좀 사왔지. 그럼 잘 있어."


여자가 나가자마자 후려쳤다


"너는 사람이 왔으면 들어오라고 하지 인사도 안하고 그러냐?"


"지금 이 상황에 인사는 무슨 인사예요? 내가 왜 그 여자한테 꼬박꼬박 인사를 해야 되죠? 당신이나 많이 하면 되잖아요."

 

 윤정 이는 여자가 두고 간 봉지를 냅다 던져 버렸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러 왔나? 재수 없는 년이 여기는 왜 자꾸 오는 거야? 그리고 잘못은 당신이 했는데 왜 내가 맨 날 당해야 되는데. 미안해서라도 나한테 잘 해야 하는 거 아냐? 아니면 조용히 날 가만 내버려두던가 이혼도 안 해 주면서 괴롭히는 이유가 뭐야. 내가 너한테 결혼하자고 했냐? 네가 나 좋다고 결혼해 놓고선 이게 뭐야. 왜 내 뒤에 아무도 울타리가 되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마음놓고 때리는 거야? 그래 맘대로 해 죽이던지 살리던지 난 그래도 인생이 불쌍해서 참으려고 하는데 이건 갈수록 태산이야. 차라리 죽여."

 

 윤정 이가 형서의 멱살을 쥐어 잡고 흔드니 형서는 제 정신이 아닌 듯이 아내를 주먹으로 내려치고 발로 여기저기 짓밟고 차고 했다. 정신을 잃었는지 움직이지 않는데도 몇 번이고 주먹을 휘두르다가 빤히 아내의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양쪽 눈두덩 이는 피멍이 들어 탁구공처럼 부풀어 있고 콧등과 입술도 피 범벅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이건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얼굴은 벌겋다 못해 푸르게 부풀어 있는 것이 아내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손을 보니 피가 묻어있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아! 내가 왜 이러지? 도대체 내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윤정아! 정신차려! 내가! 내가 잘 못했어. 정신차려!"

 

 형서는 물수건을 가져다 아내의 얼굴을 닦아주고는 입에다 물도 먹여 주었다. 잠시 후 윤정 이는 정신이 돌아오는지 퉁퉁 부어오른 눈을 가늘게 뜨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린다. 그러다 다시 까무러치기를 몇 번하더니 그대로 몸 져  누워 버렸다. 형서는 창피해서 차마 병원에는 데려가지 못하고 친구가 경영하는 한의원에 가서 한약 몇 첩을 지어 와 달여 먹였다.

 

 닷새쯤 지나니 윤정 이는 조금씩 움직일 수가 있었다. 형서는 죽을 쑤어서 아내의 입에 떠 먹여 주다가
"이제 움직일 수 있으니까 당신이 먹어. 난 애들 밥 차려놔야지."


이대로 변하지 말았으면, 누구 때문인지 간에 따뜻한 남편의 보살핌이 좋았다. 오랜만에 남편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 때 부엌으로 나간 남편의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에잇! 제기랄! 남자새끼가 이게 무슨 꼴이람. 밥이나 푸고 있고. 여편네는 자빠져 있고 에잇! 씨 팔!"


"하기 싫으면 그냥 놔둬요. 애들이 차려 먹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거 아니잖아요. 다 당신 때문인데 누굴 원망해요?"


 더 이상 어쩌랴 싶은지 형서는 밥주걱을 던져 버리고는 밖으로 휙 나가 버렸다. 윤정 이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기다시피 겨우 부엌에 나가 남편이 푸다만 밥을 밥통에다 퍼 담았다. 그렇게 조용히 며칠 지나갔다. 그 와중에도 형서의 의처증 증세는 더해 갔다.


"담배가 떨어졌네?"


자려다 말고 담배를 찾는 남편에게 얼른
"내가 사다 줄게요."


"왜 밖에 누가 기다려? "


"기다리긴 누가요. 당신 담배 떨어 졌다면서요. 그럼 당신이 사오구려."


"당신이 사와"


 사 온다고 하고서도 마음이 불안하다. 될 수 있으면 남편의 비위를 맞추어 주려고 한 것인데.


<가만히 있을걸 괜히 사온다고 그랬나?>


오늘 저녁 또 무사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온다.


"그럼 빨리 사 올 테니 가만히 누워 있어요."

 

 답배 집은 모퉁이를 돌아 골목 끝에 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라 막 문을 닫고 불을 끄려다가 담배 한 갑을 꺼내 주었다. 또 남편이 뭐라고 나올지 불안해하면서 뛰어와 막 모퉁이를 도는 순간 하마터면 기절 할 뻔했다. 남편이 노려보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왜 나와 있어요. 방에 있지."


"하도 안 와서 나왔는데 누구 만났기에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성질 같아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도 꾹 눌러 참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문 닫고 들어가는 걸 부르느라 늦었나 봐요. 만나기는 누굴 만나요. 금방 뛰어 왔는데."


"그런데 왜 그렇게 숨이 차? 뭐 했지?"


"그럼 당신도 여기서 저기까지 뛰어봐. 숨이 차는지 안 차는지 보게."


 
 다행히 무사히 넘어갔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걱정이다. 겨울에 밖에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볼이 열이 나면서 빨개져도, 일을 하다 누울 때 숨을 조금만 가쁘게 쉬어도 남편은 어디서 어떤 놈하고 뭐하고 왔는지 야단이다. 화장실 사건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이 당했다.

그런데 그렇게 맞는데도 때리는 사람이 기술이 좋은 건지 맞는 사람이 어릴 적부터 하도 맞아 요령이 생긴 것인지 몰라도 한번도 뼈가 부러지는 일은 없다. 상처는 일주일 정도면 다 나아 버리고 하니 속으로 골병이 들 지경이다.

처음엔 동네 사람들 자기네들끼리 수군수군 댔다. 윗동네 여자는 본처이고 윤정 이는 첩 인줄 알고는 늘 맞고 사느니 차라리 멀리 도망이라도 가지 그러냐고 했다. 나중에 설명을 하니 원래 바람 피는 남자들이 의처증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의처증이라고? 인간이 이젠 별거 다 하는구먼. 아주 나를 골병 들여 죽일 작정이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할 줄 알아? 두고봐 내가 고쳐 줄 거야. 이대로는 복수를 할 수가 없으니까 꼭 사람을 만들어서 내 앞에 무릎 꿇게 만들 거야.>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