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자전적 소설/◈연재소설-1.날고싶은 새(종결)

연재;날고싶은 새<27>윗동네 여자와 뻔뻔한 남자

보라비치 2005. 10. 31. 10:32

27. 윗동네 여자와 뻔뻔한 남자.

 

  사업도 잘되고 거래처들도 탄탄해 전혀 부도날 이유가 없는데도 부도가 났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지. 벌어들이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두 세배가 되다보니 감당이 어려워 진 것이다. 운영 경비나 로비활동 비용도 아닌 유흥비가 삼분의 이를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군데서 돈을 빌려댄 모양이다.

순수하게 사업에 투자를 했더라면 아주 큰 기업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윤정 이는 그런 남편이 한심하기도 하지만 밖으로 나돌며 방황을 멈추지 않는 것에 자신도 조금은 책임을 느낀다. 그래서 아이들 때문이라도 자신이 살아 남아야겠기에 어떠한 수모와 고난이 닥쳐도 견뎌낼 작정이다.


 아파트로 들어올 때 마련했던 가구들도 대충 처분하고, 윤정 이가 외로움을 달래면서 키워오던 수많은 화초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정이 들었었는데 이웃에 다 나누어주었다. 형서는 빗을 갚기 위해 사무실도 내놓고 고향에 남아있던 부동산도 팔고 아파트도 팔아 어느 정도 빗을 갚고 윤정이 에게는 아무런 의논도 없이 집을 계약했으니 이사할 준비를 하란다.

그녀는 조그만 집 한 채 라도 마련해 놓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서둘러서 짐을 정리했다.


"이사할 집이 어디예요? 이사 들어가기 전에 가서 청소해야 잖아요."


"그럴 필요 없어. 깨끗하니까 그냥 바로 이사 들어가면 돼"

 

 이삿날이 되어 짐을 먼저 보내고 뒤따라갔다. 아파트를 빠져 나올 때는 마음이 서글프기도 했지만 팔자에 없는 아파트와는 인연이 아니라고 마음을 달랬다.


형서는 별 말없이 따라주는 아내가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불안한 마음에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어 말없이 핸들을 잡고 앞만 쳐다본다.

 

 아파트 넓은 집에서 편리하게 살았는데 아직은 이사하는 집이 어떤 집인지도 모르는 상태인데 막상 가보면 얼마나 놀랄까. 아이들도 아무 것도 모른 채 새 집으로 간다니 신이 났다.

 

 제법 달려왔는데도 남편은 차를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도심지가 아닌 변두리였다.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자그마한 산들도 있고 그러다 다시 군데군데 빌딩들이 있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예요? 혹시 시외로 가는 건가요? 왜 아무 말이 없어요? 이렇게 멀리까지 올 줄 알았으면 아이들 학교부터 좀 알아보고 했어야 하는데 어쩜 의논 한마디 없이 혼자 다 처리하세요?"


"시외는 아닌데 조금 변두리야. 여기가 집이 싸더라 구. 그래도 시내버스가 다니니까 교통은 괜찮아."


 드디어 차가 멈추고 저만치 앞에 이사 짐차가 보였다.


"여기야 내려."


"여기라 구요? 정말 여기 맞아요?"


 사방을 둘러보니 거의 스레트 지붕에 오래된 기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 집이야."

 

 형서가 들어가는 집을 보니 나무로 된 대문은 아예 떨어져 나가 흔적만 남아있고, 오래되어 낡은 스레트 지붕에 마당이라고는 사람이 그냥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더 놀란 것은 방 하나에 부엌하나씩 해서 제각각 세를 들어 살고 있는 것이다. 제일 안쪽이 윤정 이네가 살 방이란다. 너무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아 형서 얼굴만 멍하니 쳐다본다.


"이 집이란 말예요? 달랑 방 한 칸에 수도시설도 안되어 있는 부엌에다 월세 방이요?"


"미안해. 어쩔 수 없었어." 


"당신도 미안 할 때가 있군요. 하긴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죠 뭐. 난 괜찮지만 아이들 어떻게 해요?"


 형서는 얼른 밖으로 나가 짐을 들여오기 시작한다. 아이들도 여기서 어떻게 사느냐 며 울먹이는데 무슨 말로 그 애들에게 이해를 시켜야 될지 눈앞이 캄캄하다.

 멍청히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그녀에게 통통하고 작달막한 키에 아줌마가 다가왔다.


"새댁이 이사 들어오는 사람이요?"


"네? 네 그런 것 같아요."


"아닌데? 내가 집주인인데 이방 계약하러 온 사람이 아니 구마 새댁이 잘못 온 것 같은데?"


"계약은 남편이 했어요. 저는 오늘 처음 왔고요."


 그 때 형서가 들어오는 걸 보더니 주인아줌마는 반갑게 맞았다.


"아이 구마 아저씨를 보니까 네 맞구마는 이 사람이 새댁 남편 이유?"


"네!"


 아줌마는 이상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윤정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라모 아저씨하고 같이 왔던 아지매는 누구요?"


"네? 여자랑 같이 왔다고요?"


"그래요. 키는 자그마하고 얼굴에 기미가 약간 끼고 ...."


"아! 네 그 사람 제 언니예요."


"그렇능교. 난 그 여자가 아저씨 마누란 줄 알았네."


분명 얼마 전 아침에 사무실에서 봤던 여자랑 닮은 것 같다.


<남편이 그 여자와 같이 왔었다고?>


 큰 가구들을 없애버리라고 할 때부터 짐작을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까지 되다니 더군다나 이런 방 얻으러 그 여자를 데리고 오다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사람이다. 윤정 이는 자존심이 너무 상하지만 지금 처지가 처지인 만큼 속으로 억 누를 수밖에...

 다락을 깨끗이 정리를 하고는 아이들 방을 꾸며주었다.


"방이 좁아도 우리 일년만 여기서 참고 살자. 아빠 힘드시니까 아무 말 말고 알았지?"

 

 딸애와 아들을 같이 쓰게 하는 게 마음이 아팠지만 아직은 초등학생이니 사춘기가 오기 전에 얼른 큰집을 얻어야 될텐데 언제가 될지 걱정이 된다. 방이 좁아 걸레질 할 때 제자리에서 한바퀴만 돌면 다 닦을 수 있어서 기운 빼며 청소 할 일은 없겠다.

 

 짐이 거의 정리가 되자 형서는 볼일이 있다며 나가 버렸다. 무슨 낯으로 윤정이 앞에 앉아 있겠는가. 아니 당연히 어떤 말이 나오리라는 걸 알고 미리 피해버리는 것일 거다. 하지만 윤정 이는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그저 아이들과 밥 먹고 잠이라도 잘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지.

 

 아이들은 새로운 동네가 신기 한 듯 놀러 나가고 윤정 이는 서글픔에 눈물만 나온다. 맥이 다 풀려 울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주인 아줌마는 측은 한 듯이 달랜다.


"아이고 새댁! 처음에는 살기가 쪼메 불편하겠지만 도 살다보면 괜찮아 지요 고마. 아직 꺼정 젊은데 돈 벌어서 좋은데 이사 가면 되지로. 그라고 아저씨랑 같이 온 여자 진짜 새댁 언니 맞소? 요 윗동네 산다드만."


"아! 네! 그래요. 맞아요."

 

<윗동네 산다고? 그럼 이남자가 지금 거기 갔단 말이야? 우리는 여기다 요렇게 팽계쳐 두고? 말도 안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리를 이 곳에 데려다 놨단 말야?>


 

 어이가 없지만 어쩌겠나. 부엌바닥엔 배수 시설도 안되어 있어서 물이 고이면 퍼내야 했다.

 형서는 매일 나가서 술이 취해 들어오고 성격은 더욱 난폭해졌다. 사업하던 사람이 놀고먹으니 답답하기도 하겠지만 그럴수록 정신을 차리고 취직을 해서라도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으련만 형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다.

생활비도  없어 쌀을 한 되씩 사다가 남편과 아이들은 밥해주고 자신은 누룽지를 푹 삶아서 먹는다. 그것도 쌀을 아껴야 하겠기에 하루에 두끼만 먹었다.

 

 동네 아줌마들은 대부분 부업을 많이 하고 있었다. 윤정 이도 안 해 본 것 없이 여러 가지 부업을 했다. 수출 머플러 가장자리 꿰매기, 면 장갑 손가락 끝 코 줍기, 낚시 밥 주머니 만들기, 밤 깎기, 옷 실밥 따기 등등 하루 반찬값 정도는 충분히 벌이가 된다. 알뜰히 해서푼돈이지만 조금씩 남편 몰래 저축도 했다.

그런데 그걸 남편이 눈치를 챘는지 돈을 요구해왔다.


"당신 돈 좀 줘봐."


"내가 무슨 돈이 있어요?"


"다 알고 있어. 필요해서 그러니까 내놔."


"그게 당신 돈 이예요? 달라고 하게. 아이들 앞으로 둔 거라서 안 되요."


"안주면 나가버린다."


 형서는 협박인지 정말 나갈 참인지 옷가지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래요. 갈 때 가 있으니까 그러나 본데 가라 구요. 먹을 거 안 먹고 잠도 안 자면서 자식들 때문에 한 푼 두 푼 모은 건데 어떻게 그걸 달라고 할 수 있죠? 사람이 얌체가 있어야지. 바람 피우는 것도 모자라서 마누라 부업해서 버는 돈까지 뺏어 가려 구요?"


 그러자 형서는 서랍에서 약병하나를 꺼내서는 물 컵을 들고 왔다.


"이거 한꺼번에 다 먹으면 죽어. 돈 안주면 이 약 마셔버린다."

 

 기가 막힌다. 애라면 한데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다. 무릎이 아파 먹는 신경통 약인데 부작용 란에 한 병 다 먹으면 마비가 온다고 적혀 있는 걸보고 겁을 주는 것이지 막상 먹으라면 못 먹을 인간이 큰 소리 친다. 어쨌거나 돈이 있는 줄 아는 이상 결코 가져가는 사람이기에 줘야 한다.

 

 한형서가 이런 남자였던가. 이사온 뒷날 뻔뻔스럽게도 여자를 데리고 와서는 윤정 이에게 인사를 시키지를 않는가. 어려울 때 돈도 빌려주고 사업할 때 도움을 많이 줬데나 어쨌다나.

이제 빌린 돈도 갚았으면 그만이지 아직까지 만나고 다니는 이유는 뭔지. 젊고 예쁜 여자도 아니고 바람피우기엔 이해가 되지 않는 상대다. 하긴 못생겼어도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애교가 철철 흘렀다.

돈도 좀 있다던 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딸이 둘 있고 그 여자 남편은 외국 에 나가서 일 이년에 한번씩 들어온단다. 남편은 외국에서 뼈빠지게 고생하며 버는 돈을 여편네는 남의 유부남과 눈이 맞아 놀아나다니 말세다.


<잘 들 해 보라지 얼마나 가는지 보자.>


여자를 아내에게 인사를 시킨 뒤로는 아예 뻑 하면 집에 들락거리게 했다.

 여자는 윗동네에 살다보니 시내 나가갈 때 버스 타러 나가면서도 들러서 인사하고 가고 시장 갔다 오면서도 들리고 어떤 날은 남편이 여자를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고는 아내에게 슈퍼에 가서 술을 사 오란다. 기분은 나쁘지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옆집 사람들 때문에 큰 소리도 내지 못하겠고 아이 들이 알게 될까봐 염려도 된다.

 

 오늘밤엔 아이들은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슈퍼는 골목 끝 모퉁이에 있어서 갔다 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두 인간을 방안에 남겨두고...

 

 윤정 이는 술병이든 봉지를 들고 온다. 문득 자신의 꼴이 한심스러워 술병을 확 내 던지고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두 년 놈을 죽여 버리고 싶다.

뛰어서 갔다오니 숨이 차서 잠시 가다듬고 있는데 방문아래 유리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였다가 인기척 소리에 놀라 두 개가 되었다.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 뿐 아무 짓도 할 수가 없다.

 

<저 짐승들이 내 집에서, 내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감히 두고봐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여자가 방문을 열고 내다본다.


"동생 미안해. 심부름 시켜서. 내가 올 때 사올걸. 얼른 들어와."


자기보다 아래라고 일방적으로 동생이라 부르는 걸 내버려뒀더니 이웃사람들도 진짜 자매인줄 알고 있다. 형서는 방 한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파렴치한 같으니...>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잘도 마신다. 형서는 음료수에다 소주를 타더니 윤정이 에게 마시란다. 그녀는 몸이 아플 때부터 술을 먹지 않다 보니 소주가 독해져 잘 못 먹는 걸 알고는 음료수에 타 주는 것이다.


"동생 수고했는데 한잔해 이렇게 마시면 순해서 괜찮아."


 몇 잔 받아 마시니 머리가 빙 돌면서 취한다. 술이 취하면 애미 애비도 몰라본다는 말이 있듯이 윤정 이도 조금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저기요. 내가 할 말이 있는데요. 두 사람 바람 피우는 건 좋은데요. 제발 집에 오지 말고 밖에서 만나세요. 호텔을 가던지 여관을 가던지 아니면 형님 집에 가던지. 난 뭐 사람도 아닙니까? 왜 내 앞에서 더러운 꼴을 보이세요? 부탁해요."


"너 미쳤냐? 어디서 주둥이 함부로 놀려 간덩이가 부었지."


"내 간덩이가 부어서 이러면 당신들은 간이 크다못해 몸밖으로 튀어 나왔군요. 낯짝도 두껍게 시리."


"이 사람은 나를 도와 줬던 사람이야."


"아하 네! 그래서 온몸으로 은혜를 갚는구려. 누가 뭐래요? 내 눈에 뛰지 말라 구요."


 여자는 분위기가 살벌하게 돌아가자 슬그머니 일어나 나갔다. 형서는 그 여자가 나가기 무섭게 아내를 향해 욕설을 퍼 부어대더니 머리 배 등 할 것 없이 발길질을 해댄다.


"차라리 죽여. 이혼도 안 해준다니 좋아. 죽여줘! 차라리 이 기회에 죽여 달라고. 더 살기 싫어."


갈비뼈가 부서지듯 아파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옷자락을 입에 악물고 속으로..  속으로만 비명 지르며 아파하고 울었다. 그러다 형서는 밖으로 나가 버리고 윤정 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목놓아 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