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자전적 소설/◈연재소설-1.날고싶은 새(종결)

연재;날고싶은 새<24> 서글픈 결혼식

보라비치 2005. 10. 27. 22:12

24. 서글픈 결혼식

 

 배가 고파온다. 두 사람은 호텔 레스토랑에 내려가 밥을 먹었다. 쓰리던 속은 더 쓰리고 사랑을 나누느라 힘이 다 빠져버렸는지 어지럽기까지 해 오히려 밥이 먹히지 않는다. 둘 다 말없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저녁때가 다 되어 헤어져 그녀는 가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 시간이후 그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 해도 결코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야! 오랜만에 집에 갔는데 하루는 더 있다오지 벌써 오나."


"음! 하루 잤으면 됐지."


"그런데 니 얼굴이 와 요 모양이고. 눈이 휑 한걸 보니 또 엄마랑 싸웠냐? 많이 울었나?"


"장사 준비나 하자. 어제는 손님 많았어?"


 정아 의 예리한 눈초리에 들키기라도 할까봐 얼른 고개를 돌리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어제 혹시 말라껭이 만났냐? 바로 뒤따라갔는데."


"아 아니!! 못 만났어."
 
 너무 피곤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버리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지만 눈치 빠른 언니랑 정아 가 행여 알아 첼까 봐 억지로 참아내고 있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한형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윤정 이는 착잡한 심정으로 예견된 결과에 스스로 마음을 달랜다. 남자에 대한 불신감은 한층 더 쌓여만 가고  그를 믿었던 과오를 범한 자신이 뻔뻔스럽고 얄밉다.


"윤 마담아! 며칠 째 한형서 그 남자가 안 오는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까?"


"글세."


"거 봐라. 아무리 찔러도 네가 눈도 깜짝 안 하니까 포기했나 부네. 그래도 그렇지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팍 쑤셔 라도 볼 것 이제. 아이고 내 그럴 줄 알았다니 께 야! 여기서 안 되니까 다른데 가서 또 똥 폼잡고 있는 갑다. 남자라 는 동물이 다 그런 거라고."


"넌 어쩜 그렇게 산전 수전 다 겪은 여자처럼 말하니?"


"아니 그럼 우리 같은 여자들 꽁무니 따라 다니는 남자들 치고 똑바른 사람 있디?"


"됐어 그만해."


"괜히 화를 내고 그러냐? 그 남자 매상도 팍팍 올려 주지도 않고 치근덕거리는데 잘됐네 뭐! 그 치 아니면 뭐 장사 못하냐?"


"그만 하라니까?"

 

<이상하다. 집에 다녀 온 뒤부터 잘 웃지도 않고 말도 잘 안하고 신경질만 내고...집에서 무슨 일 있었나? 아니면 한형서가 오지 않으니까 그런가? 그럼 이것이 은근히 그 남자 좋아하는 거 아닐까? 아유 머리야. 나는 왜 심각한 생각만 하면 머리가 띵하지?>

 

<역시 그 사람도 별수 없는 남자군. 말도 안 되는 사랑 타령으로 나를 녹여 놓고는 이제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돌아섰다 이거지. 그래 잘 가라 구. 구질구질 메 달리고 싶지 않아. 한 순간의 쾌락이었어.>


 빨리 현실로 돌아오려는 그녀의 현명한 판단을 깨뜨리기라도 하듯이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낮. 아직 장사 시작할 시간도 까맣게 멀었는데 한형서가 찾아왔다. 반가움과 원망이 한데 뒤섞여 말을 못하는 그녀에게 그는 미소로 인사를 한다.


"어마마마나! 오랜만 이유? 근데 이런 대낮에 어쩐 일이까? 통 발걸음을 않더니.."


언니와 정아 도 반가워하며 호들갑을 떤다.


"빨리 옷 갈아입고 나와요. 나하고 갈 때 가 있소."


"어딜 가는데요?"


"야! 빨리 준비하고 나가봐라. 영화라도 보여 줄 모양인데 우린 같이 가면 안 되겠지?"


"다음에 꼭 같이 갑시다."


 대충 가볍게 화장을 하고 한낮의 날씨가 제법 따뜻해진 거 같아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나섰다.


"얘! 데이트 잘 하고 와 저녁 장사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대신 선물 사와야 된다. 공짜는 없는 거니까."

 

 따뜻한 햇살이 포근하다. 봄이 거의 가까이 에 왔나보다. 몇 발자국 걷다가 그는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보고 싶었소. 얼마나 보고 싶던지 이 가슴이 다 타버렸소. 당신은 그렇지 않았소?"


"거짓말. 그런데 왜 며칠동안 오지 않았어요? 전화라도 해 줄 수 있잖아요."


"나 고향에 부모님께 다녀왔소. 산소에 말이오.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얘기했어요. 누님과 동생들도 만났지요. 언제 같이 갑시다. 누님도 같이 오라 더군."


"그랬군요."


"왜. 내가 도망이라도 쳤을까 생각했소?"


"아 아니 요. 그런데 지금은 어디 가는 거예요?"


"우리 집에 갔다 왔으니 이제 당신 집에 가서 어머니 찾아 뵙고 말씀 드려야지요."


"저의 집에 요? 안 되요. 가지 않을래 요. 아직은 가고 싶지 않아요."


"무슨 소리요. 난 당당하게 얘기하고 허락 받고 싶단 말이오. 그래도 당신 어머니  잖소. 걱정 말아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럼 엄마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놀라거나 화를 내지 않을 자신 있어요?"


불안한 마음이 영 가셔지지 않지만 그의 결심이 너무나 확고해 어쩔 도리가 없다.


<돈을 먼저 앞세우는 엄마를 이 남자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로 인해 마음이 흔들려 돌아서 버리면 어쩌지?>

 

 마당 한쪽에 양지바른 곳에 있는 화단에는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 그들을 맞았다. 지난번에는 봉오리들만 있더니 하루종일 따뜻한 햇살에 그새 활짝 피었나 보다. 그 옆에는 덩굴장미가 아직은 추운 듯 봉오리들이 오물 조물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인기척에 엄마가 나오시다 깜짝 놀란다.


"아니 왔으면 부를 것이지. 왼 일이냐?"


"꽃이 너무 예뻐서 보고 있었어요. 저..엄마 이 사람은..."


"어머님 한형서 라고 합니다. 들어가셔서 절 받으시죠."


"누구? 절은 왜... "


"안으로 들어가세요."


엄마가 미쳐 말도 꺼내기 전에 늘 와 봤던 곳처럼 엄마의 팔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엉거주춤 서 계시는 엄마를 억지로 앉혀놓고는 넙죽 큰절을 하니 엄마도 엉겹결에 절을 받았다. 윤정 이는 조심스럽게 그 옆에 앉아 그가 다음은 어떻게 나오는지 만 기다렸다.


"어머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을 공주처럼 아주 잘 키우셨더군요. 이 사람 저에게 주십시오. 결혼하고 싶습니다."


"아니 전 번에 왔을 때도 암말 없었는데 갑자기 결혼이라니? 언제부터 알았던 사이 유? 그리고 너도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거냐?"


"아닙니다. 이 사람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어요. 어머니 허락 먼저 받아야 된 답니다."


"어떤 사람인지도 아직 모르는데 허락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저...어머니 저 아직 점심을 안 먹었는데 밥 좀 주세요. 배가 고파요."


 갑자기 뚱딴지 같이 밥을 달라는 소리에 윤정 이도 엄마도 놀랐지만 배가 고프다는데 어쩌랴.


"밥은 없는데.."


"그럼 라면이라도 주세요. 두 개 끓여 주십쇼."


 서너 번 젓가락질을 하더니 순식간에 두 개의 라면이 그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개걸스럽게 먹어대는 모습에 두 모녀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안가고 회사를 다녔으면 돈은 많이 모아 놨겠네?"


"어머니는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사랑과 믿음만이 있다면 돈이 없어도 행복 할 것이고 젊음이 있는데 돈은 열심히 벌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다지 탐탁지 않은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엄마는 대뜸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결혼식 올릴 돈은 마련 해 놨니? 나는 아무 것도 못해 주니까 그리 알아. 그리고 내가 지금 돈이 좀 필요해. 가져온 돈 있으면 주고 가라."

 

 무슨 말이 더 이상 필요하겠는가. 창피한 마음에 얼른 일어나려니 한형서는 지갑에서 얼마의 돈을 꺼내 놓고는 그녀의 뒤를 따라 나왔다.


"정말 창피해 죽겠어. 거 봐요. 오기 싫다니까. 우리엄마가 그래요."


"괜찮소. 난 아무렇지도 않소. 그리고 당신을 이대로 내버려두고 싶지 않으니 빠른 시일 내로 가게 정리하고 결혼 준비하시오. 마음을 준비하란 뜻이요. 내가 알아서 다 하리다."

 

 지금은 갑작스러워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이고 여름엔 덥고 하니 여유 있게   선선한 가을쯤이 좋겠다고 했지만 그때까지 있다간 윤정 이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며 서둘러 날짜도 받아오고 그녀를 데리고 누님께 데려가 인사도 시켰다.

 

 그의 집에서는 너무 좋아라 하며 그가 하는 데로 모두 따르기로 했다.
보석상에 가서 예물도 사고 옷도 맞추고 예식장도 계약하고 며칠이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정말 결혼하는 게 맞긴 맞는가봐 야! 좋겠다. 부러워 죽겠네. 잘 살아야 되. 그리고 너! 이렇게 된 거 말야 내 덕분인줄로만 알 어 이 은혜는 꼭 갚아야 된다!"

 

 섭섭함과 기쁨이 한꺼번에 몰려와 정아 는 자신에게도 백마 탄 기사가 언제쯤 나타날지. 한껏 부러운 눈으로 윤정 이를 쳐다본다. 가게는 우선 그대로 언니가 맡고있으면서 정아 가 운영을 하게끔 해놨다. 아직 빌려간 돈도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 날짜를 받았다는 말에 엄마는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실컷 키워놨더니 돈도 좀 벌어 들려주지 않고 가다니 아무 소용없다."


"조카들 있으니까 생활은 되잖아요. 그리고 물장사 잘하면 입에 풀칠하는 거고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지난번에 모아둔 돈 엄마 다 드리고 나는 돈 하나도 없어요. 그 사람이 모든 비용 다 대주고 하는 거예요. 난 빈 손이라고요."


"아니 차라리 돈을 받아서 네가 알아서 하면 될 거 아니냐?"


 또다시 싸움이 시작되려 하기에 그녀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밤새 엄마는 잠도 안 주무시고는 혼자 잔소리를 해댄다. 아예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 같다. 

 

 결혼식 날
 엄마는 끝내 오시지 않았고 양측 부모님 자리는 텅 비었다. 그가 부모님 석을 없애 버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신랑신부입장도 두 사람이 바로 입장을 하고 조촐하게 그의 가족 친지들과 친구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은 진행이 됐다. 끝날 때까지 내내 눈물을 흘린 탓으로 눈이 퉁퉁 부어있고 화장도 다 지워져 버렸다.


"오늘 당신이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답소."


퇴장할 때 그가 윤정 이의 귀에다 속삭인 말이다. 꿈 같은 신혼여행과 크지는 않지만 조그만 방을 얻어서 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