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차라리 재가 되리라.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둘은 서로가 눈치만 볼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애꿎은 술만 마시는 한형서, 이 윤정. 풍로 위에 올려진 곰 장어가 타 들어가고 그들의 가슴도 타 들어간다.
"한형서 씨! 당신 정말 나 좋아해요? 아니 아니
사랑해요?"
사람들도 하나 둘 거의 자리를 비우고 두 사람 다 취한 거 같다. 그녀의 몸이 흐늘거리고 혓바닥은 이미 굳어져 말도 꼬이고 앞에 보이는 그의 얼굴이 두 개였다가 한 개였다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도 제법 마셨는데도 흐트러짐 없이 앉아있다.
자신까지 취해 버리면 이 불쌍한 여인을 누가 지켜주나. 의무감 때문에
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요. 사랑해요."
"이보세요. 남자들은 요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애.
당신도 다르지는 않아요. 나를 얼마나 보고 얼마나 알기에 좋아 할 수가 있냐 구. 이건 위선 이예요 위선.
알겠어요?"
"잘 들어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아요. 처음 본 순간 느끼는 감정이 중요 한 거요. 난 당신을 처음 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오. 한복이 잘 어울리는 선녀 같은 모습과
살포시 눈꺼풀 깜박이며 바라보는 슬픈 눈빛이 한 순간 나를 흔들었소."
"체! 제대로 고개 들고 바로 쳐다보지도 않았음서 그런 것도 다
봤어요? 역시 남자들은 응큼해."
"이젠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맙시다. 사실은 당신도 내가 아주
싫지는 않은 거 아니오. 싫었다면 벌써 도망갔지 여기 앉아서 같이 술 마시겠소?"
"............."
사랑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글세 이런 것이 좋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턴지 그와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또다시 상처로 남을 것이 두려워 받아드리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나 화장실 갔다올게요."
갑자기 바닥이 벌떡 일어나며 다리는 허공을 걸어간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녀가 나오지 않아 큰 볼일을 보는가 하다가 시간이 너무 지체가 되니 걱정이 된다.
"아줌마! 죄송하지만 화장실에 좀 가보시죠. 이 사람이 안 나오는데요."
"아이고 술이 많이 된 거 같던데 예. 무신 괴롭은 일이 있능교? 좀
잘 해주소."
아줌마가 화장실 쪽으로 가고 이어 놀란 아줌마 목소리에 한형서는 벌떡
일어났다.
"큰 일 났어 예. 빨리 와 보이소. 아가씨가 쓰러져 삐서
우짜노."
윤정 이는 화장실 문에 걸쳐서 쓰러져 있었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라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그를 보고 아줌마는 그녀가 너무 취해서 그러니 얼른 집으로 대려
가란다.
<집? 내가 이런 상태로 어떻게... 가게로 대리고 갈까? 아냐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
그녀의 바지와 상의가 화장실 바닥에 고인 물로 다 젖어 있었다. 추울 텐데......
그녀를 들쳐 앉고 밖으로 나오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놀라며 쳐다본다. 운동을 하기 때문에 별로 힘들지는 않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그녀가 너무 가볍게 느껴진다.
<왜 이렇게 가벼운 것이오. 당신 속이 완전히 다 비어 있구려. 당신의 빈 가슴을 내가 다 꽉꽉 채워 주리다.>
주위를 살피던 한형서는 가까운 곳에 작은 호텔이 보여 그리로 들어갔다. 옷도 다 젖어버렸고 집도 가게도 갈 수가 없으니 이럴 수밖에 없다.
"사모님이 아픈가 봐요?"
"아! 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우선 그녀의 겉옷을 벗기고는 따뜻한
수건으로 손과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가 입을 틀어막으며 벌떡 일어나 형서는 얼른 그녀를 들어 안아 화장실로 데려 갔다.
윤정 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변기에다 한참동안 토했다.
그러기를 새벽녘 동이 틀 때까지 수 없이 화장실을 왔다갔다하느라 그녀는 지쳐 버렸다.
속도 쓰리고 갈증 때문에 물을 세 병째 비우고 있다.
어느 정도 정신이 들자 수치심 때문에 그를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침대 옆 소파에 기댄 체 잠이 들어 있었다.
토하느라 밤새 진땀을 뺐던 그녀는 온몸이 뻐근하고 머리가 지끈거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라도 샤워를 했다.
<창피스럽다. 만약에 깨면 뭐라고 하지? 아유 이 맹추!>
소파 가까이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곤히 잠든 그의 얼굴을 본다. 가까이 에서 자세히 보기는 처음이다. 앞이마에 내려진 머리카락이 매력적이다.
<운동을 한다더니 손마디가 굵네! 형서 씨! 날 사랑하면 불행해 질지도 몰라요. 나의 불행을 당신에게까지 감당하게 하고 싶진 않아요. 이제 나도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이건 나 혼자만의 숙제예요.>
깔끔하게 손질된 손톱이 예쁘다. 갑자기 그의 손가락을 만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그가 깨어나지 않게 살그머니 그의 손가락을 만져본다. 따뜻하고 혹은 부드럽고 혹은 거친 손이 무릎위로 흘러있어 손등위로 눈을 감고 어느새 그녀는 입술을 갖다 대었다. 따뜻함이 입술로 전해져 오고 마음이 편안해 지는 건 웬 일일까.
"이제 괜찮소?"
언제 잠이 깼는지 그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서려는 그녀의 손을 그는 꼭 잡는다. 가운 차림이라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를 그는 자신의 가슴으로 살며시 끌어당기고는
안았다. 아무런 반항도 거절도 못하고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가슴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아버지의 품도 엄마의 품에도 안겨보지 않았기에 처음 느껴보는 따뜻함이 그녀를 너무도 편안하게 만든다. 그녀의 팔이 그의 등뒤로 감기고 그는
따뜻한 두 손바닥으로 그녀의 차가운 두 뺨을 감싸쥐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뜨거운 열기가 치솟아 온몸을 휘감는다.
들키기라도 할까 두려워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어 아예 감아 버렸다. 순간 그녀의 입술위로 그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겹쳐졌다. 얼어붙었던 그녀의 입술을 녹이기라도 하듯 그는 조심스럽고 강렬하게 그녀의 입술을 유혹하고 있다.
"윤정이! 당신을 사랑하오! 내가 당신의 빈 가슴을 다 채워 주리다.
두려워 말고 나를 믿고 내 사랑을 받아주시오. 알겠소?"
"알았어요. 나도 노력할게요. 고마워요 형서
씨!"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따뜻한 그의 가슴에서 이대로 잠들고
싶다. 영원히....
그는 윤정 이의 눈에도 이마에도 뺨에도 턱에도 따뜻하고 부드럽게 입술을 갖다대며 사랑을 확인이라도 시키듯이 키스를
퍼 부어댄다. 약간은 거칠지만 따뜻한 그의 숨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그의 입술은 그녀의 귀 볼을 애무하고 있다.
그의 손은 그녀의 목을 지나 여위고 자그마한 어깨를 어루만진다. 너무 야위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온 몸을 휘감고 있는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 그의 가슴을 더욱 설레 이게 만들고 그 열정의 도가니로 그녀는 빠져들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두 사람은 숨가쁘게 서로를 원하고있는 것이다. 그녀의 가운이 스르르 발 아래로 떨어지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그녀는 뜨거운 그의 입김으로 이미 몸은 다 녹아내려 도도하고 단단하기만 했던 그녀의 자체는 사라지고 두려움도 없어져 버린 또 다른 그녀가 태어난 것이다.
그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떨어 질줄 모르고 열정을 다 태울 참이다.
"우리 이래도 되는 거요? 당신
괜찮겠소?"
"괜찮아요. 형서 씨 이 순간은 놓치고 싶지 않아요. 당신 지금 나를
붙잡지 않으면 날아 가 버릴지도 몰라요."
너무나 뜨거움에 이미 불은 지펴졌고 서서히 아주 서서히 불은
타들어 가고 있다.
이미 다 달구어진 그녀의 온 몸 구석구석을 지금 그는 골고루 태우려 하고 있다.
그래 이왕 태우려면 숯 덩이가 되기보다는 재가 되도록 다 타버려 바람 따라 날아 가버려 흔적조차
찾을 수 없기를 바라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조그만 젖꼭지를 입술로 애무를 하고
배꼽에도...
너무 뜨거워 파르르 떨고있는 그녀의 허벅지 에도 발가락에도...
한번도 느껴보지 않은 것들에 놀라움과 환희의 회오리가 그들을 휘감고 미지의 세계로 날려보낸다.
그곳은 늘 따뜻하고 포근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아무 거리낌없이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몸둥아리로 그 바람을 만끽하려 하며 한참을 걷노라니 호수가 나타나고 맑고 투명한 그 속에 풍덩 헤엄치고 싶은 충동에 발끝을 조심스럽게 물 속에 담그려 하자 갑자기 호수 가운데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올라 잔잔하던 호수는 순식간에 큰 바다가 되어 커다란 파도를 만들어 그들을 삼켜 버렸다.
두 사람은 빠져 나오려 아무리 애를 써봐도 하면 할수록 더욱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지칠 대로 지쳐버려 힘을 쓸 수가 없어 정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물기둥이 사라지고 파도도 치지 않으니 다시 맑고 잔잔한 호수가 되었다.
"당신 처음 이었구려. 미안하오. 난 그래도 당신이 경험은 있을 줄로만 알았소. 정말 미안하오."
"뭐가 미안하죠? 조금이나마 날 믿지 못했던 거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미안해하지 말아요. 나도 어쩜 원했는지도 모르죠."
"날 믿어요. 내가 당신을 지켜
주리다."
"아니 예요. 나한테 부담 갖지는 말아요. 그건 내가 오히려
부담스러우니까요."
샤워를 하려고 일어나니 아랫도리가 뻐근하게 아파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시트에는 연분홍
얼룩으로 젖어있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주르륵 흘러내린다.
"울지 말아요. 미안해. 정말
미안해."
좀 전의 격정이 거짓말처럼 느껴지고 마냥 자상해 보이는
그가 진정 미안함에 몸둘 바를 몰라하며 그녀를 안아준다.
"내가 씻겨 줄게."
그는 윤정 이를 달랑 들어 안고 욕실로 들어가서는 따뜻한 샤워기물로 그녀의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아버지처럼 엄마처럼 편안함에 그녀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몸을 맡기고있다. 야위어 보이던 그의 몸은 군살하나 없이 근육으로 단단하다. 여자처럼 가늘어 보이는 허리 아래로 올라붙은 엉덩이는 너무 섹시하게 보인다.
"형서 씨는 여자 앞에서 옷을 벗고 있어도 부끄럽지
않아요?"
"난 당신에게 나의 모든 걸 보여 주고 싶다고 했잖소. 마음도 몸도
다 보여 주고 싶었소. 지금 당신도 벗고 있잖소. 아기 같구려."
물줄기를 맞으며 두 사람은 아까보다 더 뜨거운 입맞춤을 한다. 물과 함께 그의 혀가 입안으로 들어오니 그들의 몸은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더 강렬하게 더 깊게 사랑을 하기 시작한다.
더한 고통이 올지라도 참아낼 것처럼 그녀는 그의 몸을 바짝 잡아당겨 본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온 몸이 다 부서지고 녹아버리는 것 같다.
-다음편에 계속-
'♣ [문학] 자전적 소설 > ◈연재소설-1.날고싶은 새(종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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