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썬글라스 할아버지의 빈자리...
-정언연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떠나고 나니 살랑거리며 봄바람이 찾아왔다.
그 바람에 꽃향기도 실려와 완연한 봄을 만끽하도록 하지만
황사먼지를 데려오는 바람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토록 바람은 좋은 점도 많지만 나는 가끔은 바람이 싫어질 때가 있다.
막다른 골목에 위치한 우리 집 앞은 바람이 불어 제 낀 다음 날이면
대문 앞은 온통 쓰레기 천국이다. 담벼락 쪽으로 공터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공터에는 얌체 같은 사람들이 한밤중이면 몰래 갖다버린 쓰레기들이 널부러져 있고,
골목 안에 굴러다니던 과자 빈 봉지, 음료수병, 종이 컵 등등을 바람이
막다른 골목 안으로 몽땅 몰고 온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쓰레기들이 뱅뱅 돌아 지들끼리 뭉쳐 한 무더기로 쌓여있는 것이다.
그 주위로 쓰레기들은 아랑곳없이 노란 민들레꽃들이 활짝 피어 화사하게 웃는다.
작년보다 더 많이 핀 것 같다.
지저분한 것들만 없으면 더욱 깨끗하고 화사 할텐데...
봉투에다 쓰레기들을 주워담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두어 집 건너에 사시면서 검은 썬글라스를 늘 끼고 있었고...
낮에는 집 앞대문 앞에 내 놓은 재활용품들을 수거하다 저녁이면 리어카에 싣고
어디론가 가시는 할아버지!
알고 보니 그걸 고물상에 팔아서 술도 사 잡숫고 용돈벌이를 톡톡히 하신 단다.
전에는 빈 술병을 모아 슈퍼에 가져다주었는데 그 할아버지에게 갖다드렸더니
너무 좋아라 하시면서 고맙다고 하시며 활짝 웃으시던 할아버지!
지금처럼 봄이면...골목길에..
오래되어 사이가 벌어진 보도 블럭 사이사이로 삐져 나오는 잡풀들을
쪼그리고 앉아 맨손으로 몽땅 뽑아버리시던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것들로 살려고 삐져 나왔는데...그것들도 생명이 있고..
살 권리가 있는데...그냥 놔두시죠...
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꾹 참았다.
쪼그리고 앉아 있는 할아버지 뒷모습이 동그랗게 조그마해 보여 가슴이 아려온다.
내가 처음 이 집에 이사오던 다음날 짐 정리하고 버릴 것들을 잠시 대문 앞 빈터에
내 놓았을 때 나무라시던 할아버지!
"이 골목은 모범골목이라서 이런 것들 내 놓으면 안돼요"
"이거 쓰레기 봉투 사와서 나중에 정리 할 거예요."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화가 났었지.
"한사람이 여기다 쓰레기 내 놓으면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내 놓는다고.."
"..............."
...참 희안한 할아버지셔! 내 집 앞에 내 놓은걸 저 할아버지가 왜 그러시지?
나중에 치울 건데 별 걸다 간섭하시네!? 모범골목? 뭐가 모범이란 말인지...
그런데 저녁 무렵에 시장에 갔다가 들어오면서 보니 내가 내 놓았던 것들이
말끔히 치워져 있는 게 아닌가.
모든 것은 며칠이 지난 후에 아래층 새댁의 말을 듣고서야 알게되었다.
그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 새벽부터 골목 안을 다니시며
담배꽁초라든지 온갖 쓰레기들을 주우시고 누가 몰래 쓰레기를 내다 버렸다간
난리가 난단다.
처음엔 예사로 보았었는데 차츰 살다보니 다른 골목안 보다 우리 골목 안이
너무 깨끗하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는 잠시도 쉬지 않고 골목을 기웃거리시며 아주 조그만 쓰레기도
그냥 지나치시는 법이 없었고 특히 우리 집앞 공터에는 조그만 텃밭도 만들어 채소를 가꾸셨다. 그래서인지 그 주위엔 아주 깨끗했었지...
감히 누가 그곳에다 쓰레기를 버리겠는가!!
우리 집 이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할아버지는 틈틈이 집안으로 들어가
마루에 걸터앉아 소주를 잔에다 따르지도 않고 병째로 들이마시는 걸 보았다.
많이 마시지는 않으시는 것 같다.
아마 출출하신 모양이다.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골목을 치우시며 다니실 때 그 옆을 지날 때면
나는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었다. 아니 괜히가 아니라 당연 한지도...
젊은 사람들이 솔선수범해서 해야 할 일들인데...
차라리 쓰레기를 버리지 말던지...나 라도 직접 도와드리지는 못해도
내 집 앞만큼은 깨끗하게 치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언제 한번 뭘 좋아하시는지 물어서 해드렸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먹고 얼마 안돼서
그 할아버지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하시더니 며칠 후에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다.
폐가 좋지 않아 늘 약을 드셨는데 갑자기 급성으로 악화가 되었단다.
합병증이 와서 백내장이 왔고 수술도 힘들어 하지 못해 늘 썬글라스를 끼고 계셨단다.
한동안은 믿어지지가 않았고 버릇처럼 빈 병을 할아버지 집 앞에 갖다놓았고
쓰레기가 뒹굴 때마다 할아버지가 바로 치우실거라고 착각했었지...
진작 할아버지 좋아하시는 거 사 드릴걸...마음이 편치 않다.
서서히 골목길 블록 사이엔 잡풀들이 무성했고,
담배꽁초들이 여기저기 히끗히끗 하고.
과자봉지. 폐트 병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집 앞 공터에는 몰래버린 쓰레기봉지, 바람에 날아온 종이부스러기들이...
보다못해 대충 치워보지만 며칠 하다보니 화도 났고 힘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빈자리가 이렇게 크게 느껴 질 줄이야..
젊은 내가 하기에도 힘이 들고 화가 나는데...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하루도 쉬지 않고 몇 번씩 쓰레기를 주우셨다니 새삼 존경 스럽다.
이렇게 바람 부는 날!
쌓인 쓰레기를 볼 때마다 썬글라스 할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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